[시선★피플] 80년대 ‘가화삼보’를 이끌었던 홍콩 액션영화의 전설 ‘홍금보’
[시선★피플] 80년대 ‘가화삼보’를 이끌었던 홍콩 액션영화의 전설 ‘홍금보’
  • 보도본부 | 이호 기자
  • 승인 2017.03.24 16: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선뉴스 이호기자] 홍콩 액션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며 꽃을 피던 80년대. 이 시기를 이끌어 나가던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성룡, 원표 그리고 홍금보의 가화삼보(골든트리오)다.

성룡과 원표는 날렵한 몸매로 그야말로 무술인이라는 느낌이 강했지만 홍금보는 통통한 것을 넘어 약간 뚱뚱해 무술과는 관련이 멀어 보였다. 하지만 그가 액션연기를 시작하면 순둥순둥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엄청난 고수의 면모를 보이곤 했다. 그는 어떻게 액션을 그리 잘 할 수 있었을까?

영화 애적교육(1961)

홍금보의 유년 시절 이름은 삼모다. 그의 집안은 영화와 매우 관련이 있었는데 부모가 모두 영화계에서 일을 했었고 할머니가 액션 배우였다. 이에 영향을 받은 홍금보 역시 영화인으로의 길을 밟아 열 살 때부터 중국희극연구학교에 들어가 8년 동안 훈련을 받았다. 

그는 이 학교에서 동기로 성룡과 원표, 원규, 원화평 등 그의 인생과 인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과 인연을 맺게 된다. 

영화 '용쟁호투'

그는 학교를 졸업한 후 스턴트맨으로 활동하며 무술감독으로 당시 신생 영화사인 골든하베스트와 계약을 하게 되며 무술실력으로 정평이 나기 시작한다. 또한 이와 동시에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기 시작했는데 이소룡의 정무문(1972)과 용쟁호투(1973)에 출연한 것은 그의 유명한 일화다. 특히 용쟁호투에서는 극 초반에 꽤 임팩트 있는 역할로 출연해 완전 단역이었던 성룡과 비교되기도 했다.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그는 당시 흥행한 홍콩 영화들이 무술감독을 도맡아 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점점 끌어올리기 시작하더니 1978년부터는 자신이 스스로 영화사를 만들어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영화 '귀타귀'

80년대에 이르러서는 그야말로 홍금보의 시대였다. 1980년에 제작된 귀타귀에서 그는 주연과 감독을 동시에 맡아 강시 영화의 초석을 다졌고 이어 1985년 강시선생, 1986년 강시가족 등 강시 영화를 제작하여 우리나라에서도 일었던 강시 붐을 일으켜 제작자로서의 역량을 보여주기도 했다. 

영화 '쾌찬차'

하지만 역시 우리의 기억에 각인되어 있는 사람은 역시 액션 스타였던 홍금보다. 그는 프로젝트 A(1983), 쾌찬차(1984), 용적심(1985), 비룡맹장(1988) 등의 영화에서 성룡과 원표와 호흡을 맞춰 가화삼보라 불리며 홍콩액션영화의 정점을 찍는다. 

영화 '프로젝트A'

또한 가화삼보가 처음으로 만나게 된 작품인 오복성(1983)은 그가 제작과 감독, 주연까지 모두 맡아 대히트를 쳐 복성고조(85), 칠복성(88) 등의 시리즈로 만들어 지기도 했다. (오복성에서 성룡과 원표는 조연급이었지만 추후 시리즈에서는 비중이 점점 높아졌다.)

영화 '오복성'

80년대의 엄청난 성공에 힘입어 90년대 들어서 그는 미국시장에 도전하여 영화 나이스가이 (1997)를 감독하기도 했다.

80년대에 그의 전성기가 있었지만 2000년대에 이르러서도 그의 활동은 왕성하다. 그는 견자단과 함께 작업을 하면서 살파랑(2005)과 엽문(2008)을 대히트 시켰다. 특히 살파랑에서는 최근 트렌드인 이종격투기를 바탕으로 한 액션을 선보였으며 엽문2(2010)에서는 홍가권으로 원탁 위에서 견자단과 엄청난 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당시 58세의 나이로 그만한 액션을 펼칠 수 있다는 것도 매우 놀라웠다. 게다가 2016년에는 ‘홍금보의 보디가드’라는 작품에서 자신의 건재함을 보여줘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다. 

영화 엽문 2

이제는 흘러간 세월이고 추억에 젖어 찾아보는 작품들이 되었지만 리마스터의 바람을 타고 재개봉 되는 홍콩 액션 영화들도 눈에 띈다. 작품은 추억 안에 있지만 홍금보는 아직도 현역이다. 그가 제작자로서, 감독으로서, 그리고 배우로서 멋진 작품을 들고 나타나길 또 기대해 본다. 

연예·스포츠 인기뉴스
오늘의 주요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