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심재민 기자 / 디자인=이윤아pro | 정년 연장에 따른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때 임금 삭감 폭이 크고 이를 상쇄할 만한 사측 조치가 미흡할 경우 무효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에 앞으로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사측과 노동자 간에 갈등에 이번 법원의 판결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임금피크제는 고령화 시대로 향하면서 근로자의 연령이 높아지자 정년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골자는 일정 연령이 된 근로자의 임금을 삭감하면서 그 대신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로, 임금이 근속년수에 비례에 계속 상승하다가 생산성이 최고인 연령에서 피크(절정)를 찍은 후 이후부터는 감소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임금피크제는 사측과 근로자측 모두의 입장을 고려해 만들어졌다. 먼저 기업의 입장에서는 호봉에 따라 높아지는 임금제도 때문에 고령자들의 고임금 비용구조로 인한 기업경영의 어려움이 있었다. 반대로 고령 근로자의 입장에서 호봉이 높아질수록 임금은 높아지지만 언제까지 정년이 보장될까라는 불안감이 있어 왔다. 이 두 가지 입장이 공존하던 상황에서 고안된 임금피크제는 노사 각자가 가진 각각의 과제를 해결하는 공동의 방안으로 실행되었다.

임금피크제는 미국·유럽·일본 등 일부 선진국에서 먼저 공무원과 일반 기업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선택적으로 적용했다. 이후 한국에는 2001년부터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임금피크제와 유사한 제도를 도입해 운영해오다, 지난 2003년 7월 신용보증기금이 ‘일자리를 나눈다’는 취지로 공식적으로 임금피크제를 처음 적용했다. 이후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업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있다. 

최근 이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분쟁이 있었다. KB신용정보는 2016년 2월 노조와 단체협약을 맺고 정년을 기존 만 58세에서 60세로 연장하는 대신 만 55세부터 임금을 줄이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성과에 따라 임금피크제 적용 직전 연봉의 45~70%를 지급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직원들은 소송을 냈다. 이들은 회사 임금피크제가 아무런 보상 조치 없이 임금을 대폭 삭감하는 만큼 무효라며 적용되지 않을 때 받을 수 있던 임금과 퇴직금 차액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사실상 직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정회일 부장판사)는 KB신용정보 전·현직 직원 4명이 회사를 상대로 "임금 및 퇴직금을 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최근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총 청구액 5억4천100만여원 중 5억3천790만여원을 인용했다. 재판부는 사실상 청구액 대부분을 인정, 직원들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임금피크제 적용에 따른 임금 삭감 폭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에 주목했다. 임금피크제가 적용되지 않았다면 만 55세부터 기존 정년까지 3년간 300%의 연봉을 받을 수 있지만, 적용 후 저성과자의 경우 55세부터 5년간 받는 총액이 기존 연봉의 225%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근로자들은 임금피크제의 시행으로 인해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됐다고 볼 수 있다"며 "근무 기간이 2년 늘어났음에도 만 55세 이후 받을 수 있는 총액은 오히려 삭감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손해의 정도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런 임금 삭감의 불이익을 보전하기 위해 사측이 업무강도 저감 등 조치도 충분히 하지 않았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이처럼 법원은 임금피크제의 구체적 시행 형태에 따라 다른 판단을 내리고 있다. 앞서 KT 전·현직 직원들은 회사의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가 무효라며 소송을 냈지만, 지난해 6월 1심에 이어 올해 1월 2심도 원고 패소 판결한 바 있다. 

고령 근로자의 정년을 보장하는 대신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 이것이 시행된 이후 반기는 측면도 있지만 크고 작은 노사 갈등을 야기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유사한 상황을 빚어질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이와 관련한 판결들은 추후 유사한 분쟁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