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무술 역사에 화려한 발자취를 남긴 사람 ‘이소룡’은 누구인가
[카드뉴스] 무술 역사에 화려한 발자취를 남긴 사람 ‘이소룡’은 누구인가
  • 보도본부 | 이윤아 pro
  • 승인 2022.01.14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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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박진아 / 디자인 이윤아Pro] “한계에는 한계가 없다.” “나는 만개의 발차기를 한 번씩 연습한 사람보다 한 번의 발차기를 만 번 연습한 사람이 더 두렵다.” “불멸의 열쇠는 모두가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작은 용이라 불리며 전설의 무술인이자 영화배우로 남은 이 사람은 바로 ‘이소룡’이 남긴 말이다. 

이소룡! 하면 튼튼하고 건장한 체구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소룡이 어린 시절부터 몸이 건강했던 건 아니었다. 몸이 약했던 이소룡은 7살 무렵부터 몸을 단련하기 시작했다. 그는 19살에 홀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평소 쿵푸에 관심이 많았던 이소룡은 용돈벌이를 위해 쿵푸 교습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그는 쿵푸의 장단점을 분석해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무술 체계를 연구했다.

1963년 이소룡은 최초로 쿵푸 도장을 차린다. 무술의 매력에 빠진 이소룡은 이듬해 1인 펀치 등 직접 신기술을 개발해 국제 가라테 선수권 대회에서 선보였고 그의 화려한 액션은 단번에 할리우드의 주목을 받게 되며, 영화배우와 극작가 등 할리우드 관계자들에게 무술을 가르치게 된다. 

이렇게 얼굴이 알려진 이소룡은 ABC의 액션 드라마 ‘그린 호넷’에 처음으로 출연해 이름을 알렸다. 이때부터 그의 무술 영화 인생이 시작됐는데, 연기의 길에 접어들어서도 무술에 대한 그의 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그에게 쿵푸 영화 출연의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이소룡의 화려한 액션이 돋보인 첫 주연작, ‘당산대형’이다. 영화 ‘당산대형’은 홍콩 영화사상 최대 흥행작으로 등극했고 이전의 영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전설의 쿵푸 영화로 남았다. 이후 1972년 두 번째 주연작인 ‘정무문’에서 이소룡은 더 역동적인 액션을 선보였다.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울음소리 같은 기합. 그리고 쌍절곤 액션을 ‘정무문’에서 처음 시도했다.

연이어 작품이 흥행하자 자신감을 가진 이소룡은 직접 각본과 감독을 맡은 작품인 ‘맹룡과강’을 제작했다. 이탈리아를 무대로 한 ‘맹룡과강’은 폭풍 인기를 끌었는데, 특히 가라테 고수였던 척 노리스와 이소룡이 대결하는 장면이 명장면으로 꼽혔다. 

이소룡은 액션 영화를 찍으면서 자신만의 무술 철학을 적용시켜 나갔다. 쿵푸를 기초로 권투, 펜싱, 태극권, 유도, 레슬링, 가라테, 태권도 등의 여러 무술을 절충시킨 ‘절권도’를 창시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절권도에 대해 “최소한의 움직임과 에너지를 이용해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는데, 사람들이 절권도에만 구애받지 말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술인의 대명사로 불린 이소룡은 1973년, ‘사망유희’ 영화 제작 기간에 의문의 사인으로 숨을 거둔다. 그의 유작이 된 ‘사망유희’에서는 당시 미국 프로농구 스타 카림 압둘자바와 겨룬 격한 무술신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무술방식을 추구한 이소룡. 32세에 비교적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신체와 정신을 단련하는 그의 무술 철학은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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