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조재휘] 일본의 게임 회사 닌텐도의 게임 디자이너이자 현재 대표이사 펠로우인 ‘미야모토 시게루’. <슈퍼 마리오 시리즈>, <동키콩 시리즈>, <젤다의 전설 시리즈> 등 수많은 작품을 개발해 인기를 끌었다. 그는 2006년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아시아의 가장 위대한 기업인들' 중 한명에 포함되기도 했다.

아버지 덕분 닌텐도 입사

[사진/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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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일본 교토부 출신 미야모토는 가나자와 미술공예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어릴 때부터 장난감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던 그는 아버지의 소개로 닌텐도에 입사하게 된다. 당시 닌텐도는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막대한 빚이 있었고 석유파동의 후폭풍으로 신입사원을 뽑지 않을 시기였다. 하지만 아버지가 사장과 친구였던 덕분에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동키콩’의 대성공

[사진/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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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모토가 처음 맡은 일은 게임기의 외장을 칠하는 일이었다. 그러다 NOA(Nintendo of America)에 급히 게임을 보내야 하는 일이 생겼고 사내 게임 제작 공모에서 뽀빠이 게임의 초안을 만들며 게임 디자인에 발을 들이게 된다. 이때 미야모토가 개발한 것이 바로 <동키콩>이라는 게임이다. 게임 디자인, 캐릭터 디자인 등 대부분을 혼자서 담당했으며 테마 멜로디도 기타로 직접 작곡했다. 이 게임은 대성공을 거두고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닌텐도에서의 영향력

[사진/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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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키콩>의 성공 이후 <마리오브라더스>를 포함한 여러 게임을 히트시키며 미야모토는 닌텐도의 중심적인 개발자가 되었다. 이후 <젤다의 전설>,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3>과 같은 후속작이 연이어 히트를 치면서 미야모토는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는 게임 개발뿐만 아니라 게임패드를 비롯한 하드웨어의 인터페이스적 측면에도 심혈을 기울여 ‘슈퍼 패미컴’, ‘닌텐도 64’, ‘게임큐브’, ‘닌텐도 DS’, ‘닌텐도 Wii’ 등의 제작에도 전반적인 개발이나 디자인에 참여했다. 현재 닌텐도 내에서 미야모토가 내린 지시는 최우선으로 처리해야 할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매우 큰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으로 인정받은 경력

[사진/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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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에는 미국의 게임 업계 공로자에게 주어지는 상인 AIAS 전당에 처음으로 올랐다. 2006년 3월에는 프랑스에서 훈장으로서 예술문화훈장 슈발리에장을 받았으며 같은 해 5월에 개최된 비디오 게임 관련 행사 E3에서 영화계의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와 Wii로 테니스 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이후 3DS 게임인 <슈퍼 마리오 3D랜드>와 <루이지 맨션 다크 문>, Wii U 게임인 <피크민 3>를 제작했다.

서양 게임계서도 인정받다

[사진/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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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게임계에서도 일본인 미야모토에 대한 높은 평가가 이어진다. 북미 콘솔 게임 시장에서 대부분의 게이머들이 미야모토의 게임을 하며 자라왔고, 그중에 개발자가 된 사람들은 그의 게임을 하며 게임 개발자의 꿈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여러 매체에서도 비디오 게임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거론되고 있으며 타임지는 그를 ‘현대 비디오 게임의 아버지’, 뉴욕타임즈는 ‘비디오 게임계의 월트 디즈니’라고 평했다.

비록 아버지의 친분으로 낙하산 직원일지 몰라도 기업을 일으킨 주역 ‘미야모토 시게루’. 무언가를 개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아직 미야모토가 닌텐도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만큼 또 어떤 혁신적인 게임이 탄생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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