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알고 보니 일제시대 잔재? 다시 불거진 ‘국보 1호’ 논란 [지식용어]
숭례문, 알고 보니 일제시대 잔재? 다시 불거진 ‘국보 1호’ 논란 [지식용어]
  • 보도본부 | 김아련 기자
  • 승인 2020.10.16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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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김아련 / 디자인 최윤수 수습] 정치권을 중심으로 숭례문(남대문)을 대한민국 국보 1호에서 해지하고 훈민정음 해례본으로 대체하자는 움직임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 지난 8일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가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과 함께 '훈민정음 해례본 국보 1호 지정에 관한 청원'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러한 국보 1호 변경 논란은 25년째 거듭 이어져왔다. 일제식민지 시대 당시에 1934년 조선총독부는 보물 1호에 남대문을, 보물 2호에 동대문(흥인지문)을 각각 지정했다. 그리고 해방 이후 1962년 한국 정부에서도 이를 참고해 국보 1호와 보물 1호에 각각 남대문과 동대문을 선정했다.

국보는 ‘나라의 보물’이라는 뜻으로, 문화재 가운데 특히 가치가 큰 문화재를 가리키며 앞선 과정을 통해 선정된 ‘국보 1호’ 남대문은 현재 서울 중구에 있는 조선전기에 축조된 서울도성의 성곽문을 말한다. 이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중층건물이며 화강암으로 구축한 누기와 마름석축으로 이루어진 기층의 중앙에 홍예문이 있고 판문에 철갑을 씌운 두 짝의 문이 달려 있다.

오래 전부터 일제식민지의 잔재라는 논란이 이어져오던 국보 1호 남대문은 2003년 일본 도호쿠대의 오타 히데하루 연구원이 서울대 국사학과 기관지 한국사론에 논문을 실으면서 비난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해당 논문에 따르면 일제는 조선의 궁궐과 성곽을 항일의 상징으로 보고 파괴하려 했지만,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가 남대문을, 고니시 유키나가가 동대문을 열고 지나갔기 때문에 역사적 가치가 있다며 보존해 보물로 지정했다는 것이다.

이후 시민단체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국보 1호 시정 움직임이 있었지만 당시 문화재위원회에서 '사회적 혼란을 부를 수 있다'는 반대 등으로 매번 무산됐다. 또 지난 2008년 방화로 남대문이 소실된 후 부실 복원 논란이 불거지면서 국보 1호로서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의견도 많아졌다.

이번에 대표 청원인인 구진영 문화재제자리찾기 연구원은 “2008년 숭례문 소실이후 부실과 비리로 얼룩진 숭례문보다 민족 문화를 대표하는 훈민정음이 국보 1호로 변경되어야할 적절한 시점이 도래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들 단체는 2015년  우리문화지킴이와 공동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64.2%에서 ‘숭례문보다 훈민정음이 국보 1호가 돼야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며 이번 국회청원을 계기로 국보 1호 변경문제가 문화재청 소관을 떠나 국회에서 국민여론을 수렴하는 쪽으로 결정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문화재 지정번호는 가치 서열에 따라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관리주민등록번호처럼 단순한 관리번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보 1호’가 갖고 있는 상징성이 크기 때문에 한동안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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