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예측 불가한 북한... 역대급 도발 사건들은?
[카드뉴스] 예측 불가한 북한... 역대급 도발 사건들은?
  • 보도본부 | 김아련 기자
  • 승인 2020.06.2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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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김아련 / 디자인 최지민] 최근 북한이 화해의 상징이었던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데 이어 대남전단 살포를 준비하면서 남북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4.27 판문점선언이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북한의 연이은 행동에 우리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상태다. 예측 불가한 북한의 끊임없는 역대급 도발 사건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1945년 해방 후, 북위 38도선 이북 지역에는 김일성이 집권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들어섰다. 남과 북에 다른 정권이 들어서면서 혼란스러운 해방 시기부터 남북교전이 자주 일어났다.

북한은 적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분단이후부터 지속적으로 대남도발을 시도했고,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1950년대 초반 6.25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는 거짓으로 귀순한 간첩들이 침투를 시도했으며 6.25 전쟁 직후에도 정보 수집과 체제 교란을 위해 간첩을 보냈다.

그중 대표적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김수임 간첩사건’이 있다. 김수임은 1950년 2월 초 북한의 주요 인사를 월북시켰다는 점과 기밀문서를 북한에 유출했다는 혐의로 1950년 4월 17일 체포됐고, 북한의 간첩으로 몰려 사형 당했다.

선전포고 없이 북한의 기습 침공으로 발발한 1950년 6.25전쟁 이후에도 무장공비에 의한 침투와 교전이 잦았다. 특히 1968년 1월 21일에는 북한 공작원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한 일명 ‘김신조 사건’이 벌어졌다. 총 31명이 침투했지만 29명은 사살되었고 김신조만 유일하게 생존했다.

이 사건 이후 북한의 간첩이나 공작원을 식별하기 위해 정부는 주민등록번호를 전 국민에게 부여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민등록번호를 최초로 부여받았으며, 북한의 도발 태세에 대응하기 위해 예비군과 5분대기조, 육군3사관학교 등이 생겨나게 되었다.

1970년대부터 북한은 비무장지대를 은밀히 침투할 수 있는 땅굴을 굴착하기도 했고 무력을 동원해 위협하기도 했다. 특히 1976년 8월 18일 판문점에서는 북한의 무력 도발로 인해 미군 장교 2명이 참혹하게 살해당하는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벌어졌다.

사건을 보고받은 미군 정부는 강경하게 대응하기로 했고, 6.25전쟁 이후 최초로 주한UN군과 대한민국 국군이 준전시체제에 돌입했다. 또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대한민국 육군 특수전사령부 제1공수특전여단 대원들로 이루어진 64명의 결사대가 조직됐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보복작전이 수행됐다.

1990년대에도 무장공비 침투사건이나 테러사건이 끊이지 않았고, 1999년 6월 15일에는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제1연평해전’이 일어났다. 이는 북한 해군의 도발로 벌어진 남북 함정간의 해전으로 당시 한국 해군은 7명이 부상을 입었고 고속정이 경미한 피해를 입었다. 한편 북한 해군은 어뢰정 1척과 경비정 1척이 침몰했고 다른 경비정 3척도 심각한 타격을 입고 퇴각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제1연평해전에서 우리 군은 승전했지만 이후 북한이 보복하면서 2002년 6월 29일에 다시 ‘제2연평해전’이 발발했다. 당시 2척의 북한 경비정이 NLL을 침범했고 기습 발사를 하면서 교전이 시작됐다. 예상치 못한 교전에서 우리 군 6명이 전사했고 18명이 부상당했으며 참수리 357정이 침몰했다.

이후 우리 군은 대대적으로 해군력을 강화했고 전투함정 위주로 함정을 구성했다. 또 차단기동 과정을 삭제하는 등 교전수칙을 개선했다. 2004년 시위기동과 경고방송을 동시에 하도록 개선해 '경고방송 및 시위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의 3단계로 수칙을 단순화하고 현장 지휘관의 권한을 강화해 즉각 대응 능력을 향상시켰다.

2010년대는 북한에서 3대 세습 체제가 진행되면서 기습적인 타격이나 간접적인 도발이 일어났다. 특히 2010년 3월 26일에는 대한민국 백령도 남서쪽 약 1km 지점에서 포항급 초계함인 PCC-772 ‘천안함’이 훈련 도중 조선인민군 해군 잠수정의 어뢰에 피격당해, 선체가 반파되며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인근 지역에서 작전 중이던 해경 함정에 의해 58명이 현장에서 구조되었으며 46명이 전사했다. 이에 정부는 천안함 함미를 인양한 후 민군 합동조사단을 꾸려 조사에 들어갔다.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 등 15개국이 북한을 비난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고, 국제사회의 압박이 이어졌다. 우리정부에서는 전사한 장병들의 유족들에게 보상을 지급했다.

북한의 역대급 도발 사건들은 우리 국민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고 무고한 생명들을 앗아갔다. 남북관계가 군사적 긴장으로 치닫고 있는 요즘, 미군을 철수한다고 압박하는 트럼프까지 더해지며 한반도의 긴장감은 고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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