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역 학생들의 외침,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시초가 된 ‘2.28 민주운동’ [지식의 창]
대구 지역 학생들의 외침,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시초가 된 ‘2.28 민주운동’ [지식의 창]
  • 보도본부 | 홍탁 PD
  • 승인 2020.02.27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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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5일, 4월 19일, 5월 18일, 6월 10일, 그리고 2월 28일. 이 날짜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기념일이라는 점인데요. 2·28민주운동은 대구지역 8개 고등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발생한 최초의 민주화 운동입니다. 정부의 오랜 노력 끝에 2018년 2월 6일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2·28민주운동에 대해 알아봅니다.

[출처/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5.18 기념재단, 위키미디어]

◀MC MENT▶
1960년. 이승만과 여당인 자유당은 발췌개헌과 사사오입개헌 등을 통해 독점적인 정치권력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3월 15일 치러질 제4대 대통령선거와 제5대 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 후보에 이승만과 부통령 후보에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한 불법적인 수단이 동원됩니다. 바로 이로 인해 학생들이 불의와 부정을 규탄하며 거리로 뛰쳐나온 것, 그것이 2.28 민주운동입니다.

[출처/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5.18 기념재단, 위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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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를 한 달 앞둔 시기. 야당의 대통령 후보인 조병옥이 급서(急書)를 하게 됨으로써 이승만의 당선은 뚜렷해졌습니다. 그러나 부통령 후보인 이기붕은 현직 부통령인 장면과의 맞대결에서 당선을 확실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는데요. 그러던 중 2월 28일 대구 수성천변에서 예고돼 있던 장면의 유세에 전국의 관심이 모아졌습니다. 당시 대구는 장면의 부통령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이 유세는 선거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는 일로 여겨졌습니다.

◀MC MENT▶
따라서 이승만 정권은 2월 28일 예고된 장면의 유세에 시민들이 나가지 못하도록 부당한 지시를 합니다. 특히 대구의 경북고, 대구고, 경북사대부고 등 8개 공립 고등학교 학생들이 유세장에 나오지 못하도록 조기 중간고사나 송별회, 임시수업 등을 핑계로 '일요일에도 등교하라'는 지시를 내린 겁니다. 이에 학생들은 학교별로 긴급회의를 열어 일요 등교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지시를 철회할 것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게 된 겁니다.

[출처/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5.18 기념재단, 위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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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2월 28일, 부당한 지시에 반발한 학생들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대구 경북고의 이대우 학생부위원장 등은 학교 조회단에 올라가 전날 작성한 결의문을 외쳤는데요. 이에 8백여 명의 학생들은 교문을 나섰고, 구호를 외치며 시위에 동참했습니다. 시위 첫날에는 경북고와 대구고교 학생들이, 다음 날인 2월 29일에는 경북여고, 대구여고, 대구상고의 학생들이 데모에 뛰어들었습니다.
교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뛰쳐나온 학생들은 지난 30여 년간 자행된 자유당 정권의 불의와 부정, 독재를 규탄하고 민족문제, 민중생존 문제에 대해 발언하며 시위를 이어갔습니다. 마침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출처/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5.18 기념재단, 위키미디어]

◀MC MENT▶
당시 대구지역 언론은 어린 학생들의 용기에 힘을 얻어 2.28 대구학생의거를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이 소식은 곧 다른 지역으로 퍼져 학생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됐습니다. 부정부패와 독재권력에 대항한 학생들의 시위는 시민들의 지지에 힘입어 3.15마산의거가 되었고, 훗날 5.18민주화 운동의 기반이 됐습니다. 부당함 아래에서도 정의와 자유를 갈망했던 학생들의 용기는, 민주주의를 향한 불꽃으로 역사 속에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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