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김아련/디자인 이연선]

▶ 캐서린 그레이엄(Katharine Graham)
▶ 출생-사망 / 1917년 6월 16일 ~ 2001년 7월 17일
▶ 국적 / 미국
▶ 활동분야 / 신문 발행인

정치권과 기업체의 외압에 물러서지 않는 <워싱턴포스트>지의 신문 발행인이었던 캐서린 그레이엄은 닉슨 정부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낱낱이 밝히면서 퓰리처 상을 수상했고 워싱턴포스트지를 세계적으로 신뢰받는 언론사로 이끌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내조에 충실했던 캐서린 그레이엄
캐서린 그레이엄은 미국의 금융 거물로 알려진 유진 메이어 집안의 넷째로 태어났다. 유진 메이어는 당시 투자에 성공해 엄청난 부를 쌓았고 미국 정계와도 깊은 인연이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아그네스 독일계 출신으로 예술 분야에 대한 지식이 뛰어났고 글 쓰는 활동도펼쳤다. 미국 사회의 부유하고 교양 있는 집안에서 교육 받은 캐서린은 무난하게 학업을 마치고 명문 여자대학인 바사대학에 입학했다가 다시 시카고 대학으로 편입했다.

그녀는 부모님이 소개해준 청년이었던 필립 그레이엄을 만나 결혼했다. 당시 미국의 상류층에서는 여성의 활동이 제한적이었는데 캐서린 그레이엄도 결혼 후에 집안일에만 몰두하며 남편의 내조에 충실했다. 아버지 유진 메이어는 파산 직전의 신문사였던 <워싱턴포스트>지를 인수했고 캐서린의 남편인 필립 그레이엄에게 회사를 물려주었다.

-<워싱턴포스트>지의 신문 발행인이 된 캐서린 그레이엄
필립 그레이엄은 <워싱턴포스트>지를 지역 신문에서 영향력 있는 언론사로 만드는데 힘썼다. 그러나 그는 자사의 여직원과 불륜을 저질렀고 캐서린 그레이엄에게 히스테리를 부리기도 했으며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아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했다. 결혼생활이 평탄하지 못했던 그녀는 남편이 죽은 뒤 <워싱턴포스트>지의 경영에 나섰다.

오랜 시간 사회생활에서 멀어져 있던 그녀는 수많은 고민 끝에 신문 발행인으로서 적극적으로 회사의 경영에 뛰어들었다. 그녀가 언론사에서 일한 경험은 대학을 졸업한 뒤 샌프란시스코에서의 기자 생활과 결혼 전 <워싱턴포스트>지에서 잠시 일한 것뿐이었다. 그녀는 유능한 편집장을 영입해 신문의 질을 높였고 사업들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재정적으로 안정적인 언론사를 만드는데 기여했다.

-닉슨 정부의 비리를 폭로한 <워싱턴포스트>지
캐서린 그레이엄은 정치권과 기업으로부터의 외압에서 자유로운 <워싱턴포스트>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워싱턴포스트>지는 1971년부터 1974년까지 당시 닉슨 정부의 기밀 문서 사건을 보도하면서 국가기밀 누설 혐의로 보도정지 판결을 받았지만 즉각 대법원에 항소해 언론의 자유를 지켜냈다.

1972년에 닉슨 대통령의 측근이 닉슨의 재선을 위해 워싱턴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본부에 침입해 도청장치를 설치하려 했던 이른바 ‘워터게이트’ 사건을 낱낱이 밝혀내 세상에 알렸고 정부와 언론간의 싸움이 3년간 이어졌다. 그러다가 <워싱턴포스트>지의 기자들이 사건의 중요한 단서가 된 닉슨 대통령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테이프를 공개하면서 언론이 승리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워싱턴포스트>지는 미국 국민들에게 가장 신뢰받는 언론사로 자리매김했으며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회사가 되었다.

-외압에 굴하지 않은 <워싱턴포스트>지를 이끈 캐서린 그레이엄
정부의 비리를 밝히는데 물러서지 않았던 <워싱턴포스트>지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인해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뉴스·보도 상으로 알려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캐서린 그레이엄은 언론의 중심을 지키고 당시 정권의 심한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기자들의 자유로운 취재와 보도에 앞장서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인정을 받았다.

그녀는 30년 동안 <워싱턴포스트>지를 경영하면서 매출액 14억 달러가 넘는 언론사로 키웠고1991년 아들 도널드 그레이엄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고 회사를 퇴임했다. 캐서린 그레이엄은 회사를 나온 후에도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활동했는데 여성 최초로 AP통신의 이사로 활동하며 언론의 독립과 발전에 이바지했다.

캐서린 그레이엄은 2001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가 세운 정의로운 언론사의 표방은 아직까지도 미국 사회에서 영화나 책을 통해 널리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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