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심재민 / 디자인 최지민] 기본적으로 생물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산소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사람은 물론 그 밖의 동물들도 마찬가지고, 심지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조차 생존을 위해서 산소가 꼭 필요하다. 그런데 아주 극히 일부 미생물의 경우 산소가 없이도 아무런 지장 없이 살아갈 수 있는데, 이를 혐기성미생물이라 한다.

혐기성미생물이란, 성장하고 살아가는 데 있어 산소를 필요로 하지 않는 미생물을 말한다. 혐기성미생물이라는 이름은 산소를 싫어한다고 해서 ‘혐기성(嫌氣性)’이라는 명칭이 붙었는데 대표적으로 소나무 재선충, 심장사상충 등으로 잘 알려진 선충이 혐기성미생물에 포함된다.

혐기성미생물은 산소에 대한 민감도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첫 번째 산소가 전혀 존재한지 않는 환경에서 살아가며 오히려 산소가 있으면 죽는 미생물로 이를 ‘절대혐기성미생물’이라 한다. 그리고 두 번째, 아예 산소의 존재 유무에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아가는 미생물을 ‘통성혐기성미생물’이라 한다.

혐기성미생물은 보통 토양에서 살아가며 식물에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다. 혐기성미생물이 생존하기 위해 하는 혐기성 대사는 에너지 효율이 나쁘고 불완전한 산화물을 생성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식물의 뿌리에 나쁜 영향을 주는 물질을 생성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흔히 토양 중에는 전체 세균 수의 약 10% 정도가 혐기성 세균이며 그 중 대부분은 통성혐기성미생물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혐기성미생물은 그간 현대 과학으로 풀 수 없는 미스터리로 여겨져 왔다. 산소는 세포 내에서 에너지를 만드는 등 생명 활동에 필요한 필수적이 요소이기 때문에 산소 없이 살아가는 혐기성미생물의 대사 정보가 밝혀지기 어려웠던 것.

그런데 베일에 가려져 있던 혐기성 미생물의 생존 원리가 우리나라 연구진에 의해 밝혀지게 됐다. 한국연구재단(NRF)은 지난 달 27일, 박현호 중앙대학교 약학과 교수와 김성환 첨단의료복합단지 신약개발지원센터 박사 공동 연구팀이 혐기성미생물이 산소 없이도 원활히 에너지를 발생시키고 단백질을 생성하는 핵심 요인을 규명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지난 달 19일 이 같은 내용의 논문을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했다.

연구팀은 빵이나 맥주를 만들 때 사용되는 효모 역시 산소를 싫어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효모는 산소가 없으면 단백질을 더 많이 생산하는데, 연구진은 그 원인이 효모 속에 든 ‘Osm1’이라는 단백질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진이 포착한 Osm1에서는 황 결합 현상이 나타났다. 황 결합 현상은 아미노산이 합쳐지거나 구조를 변경해 새로운 단백질을 생성하는 기본 원리 중 하나로 이를 바탕으로 혐기성미생물은 산소 없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혐기성 미생물의 생명현상을 일부 규명한 만큼, 이를 방해하는 약물 등의 개발로 이어진다면 의료분야에서 큰 발전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그간 토양에 서식하며 식물에 악영향을 끼쳤던 혐기성미생물에 대해 효과적인 처리 방법이 강구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소나무 재선충 박멸에 큰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소나무 재선충은 빠른 시간에 수만 그루의 나무를 파괴시킬 수 있어 피해가 심각하다. 실제 경상남도는 올해 상반기에만 소나무 재선충병에 걸린 피해 고사목 8만4000그루를 제거했지만, 이후 11월 현재까지 무려 1만 9000그루의 소나무가 추가로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에 따르면 Osm1과 같은 단백질을 파괴를 목표로 하는 선충 치료제 및 예방제 개발을 계획하고 있는 것을 알려져 있다.

국내 과학 기술로 밝혀진 혐기성미생물의 생존 원리. 이번 연구가 빛을 발해 농가와 국내 산림에 큰 피해를 줬던 재선충, 심상사상충 등의 효과적인 박멸에 큰 역할을 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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