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눈물 보인 ‘금수산태양궁전’...그곳의 다양한 이름은? [지식용어] - 시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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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이 눈물 보인 ‘금수산태양궁전’...그곳의 다양한 이름은? [지식용어]
  • 보도본부 | 심재민 기자
  • 승인 2018.01.13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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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심재민 / 디자인 최지민] 2018년. 새로운 해를 기념하고 목표를 다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이는 비단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일로, 우리의 동포이자 대치중인 북한도 마찬가지 모습이었다.

그 중 매년 북한 고위층의 새해 참배는 항상 눈길을 끌어왔다. 올해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작년 12월 김정은을 필두로 지난 1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박봉주 내각 총리,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등이 금수산 태양궁전을 참배했다. 이처럼 북한 고위급 인사들의 참배가 이어지자 ‘금수산태양궁전’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금수산태양궁전은 최초 1973년 3월에 착공되어, 1977년 4월 15일 김일성 탄생 65돌 기념으로 준공된 북한의 석조 건물이다. 이곳은 북한 평양의 흔히 모란봉이라 불리는 ‘금수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금수산태양궁전은 처음 지어졌을 당시 유럽식 궁전을 표방한 5층 복합 석조건물로, 김정일 생전에 그의 집무실 및 거처로 사용되었다. 향후 가치가 커지며 궁전으로 승격되었고 중앙 홀 가운데 대형 김일성 초상화와 김일성 입상을 세워졌다. 또한 궁전 앞에는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의 생일을 상징하는 커다란 콘크리트 광장이 조성되었다.

그렇게 평양의 랜드마크가 된 금수산태양궁전은 지하 200m 깊이의 평양지하철과 이어지게 되며 고위급/귀빈의 왕래가 이어지게 되었다. 다만 경내에 30여 개의 감시/검문 초소가 있어 일반인의 접근은 통제되며 고위급 귀빈들의 입장만 허용되었다. 특히 이곳은1990년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 때 남한 대표단 일행이 김일성과 만나 대화를 나눈 장소이기도 하다.

금수산태양궁전은 겉모습만큼 이름도 여러 번 바뀌어 왔다. 19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하기 전까지 그의 관저로서 금수산의사당/주석궁이라고 불리었다. 이후 김일성이 사망하자 그가 생전에 거처로 사용되었던 만큼 시신이 미이라로 이곳에 영구 보존되기 시작, 김일성 사망 1주기를 앞두고 금수산기념궁전으로 명칭으로 바뀌었다. 이후 김정일의 생전 70번째 생일인 2012년 2월 16일에 금수산태양궁전으로 한 번 더 개칭하였다.

금수산태양궁전은 최초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것처럼 이후 김정일이 사망하자 그의 시신도 이곳에 안치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궁전이라기보다는 기념관적인 역할이 강조되면서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생전에 사용한 물품과 전용열차, 요트 등도 전시되는 것은 물론 시설마다 북한 전역에서 모은 순금으로 화려하게 치장되었다.

금수산태양궁전은 그렇게 오랜 역사가 더해지며 대외적으로, 대내적으로 이제 북한의 주요 기념관이 되었다. 특히 김일성과 김정일 두 명의 지도자가 차례로 안치되며 세계적 이슈를 모은 시설로 자리매김했다. 그래서일까. 김정은이 눈물을 보이기도 하는 등 간혹 인간미가 느껴지기도 하는 이곳에는 또 어떤 변화의 바람이 불어올지 궁금증이 커진다. 그들의 문화재이기도, 시대의 변화를 담아내기도 하는 금수산태양궁전에서 또 어떤 이슈가 만들어질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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