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한지윤 에디터/디자인 이연선 pro]

▶ 피타고라스 (Pythagoras])

▶ 출생-사망 / B.C 580경 ~ B.C 500경

▶ 국적 / 그리스

▶ 활동분야 / 종교, 철학, 수학

▶ 주요활동 / 피타고라스의 정리 증명, 피타고라스 학파 형성

‘만물은 수(數)’라고 주장하며 수학을 탐구하고 이를 사람, 생명, 음악 등에 적용했던 비밀스러운 철학가. 또한 피타고라스 학파를 통해 여성 연구자를 최초로 받아들인 선구적인 인물이다.

 

-편력(遍歷: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생활을 통해 학식을 쌓다.
피타고라스는 그리스 에게해에 있는 사모스 섬에서 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이집트, 그리스, 이탈리아 등 지중해 등지를 누볐던 인물로 아들이 마음껏 공부하고 열린 시각을 키울 수 있도록 배려했다. 피타고라스는 스승이었던 탈레스의 권유로 사모스 섬을 떠나 유학했으며 밀레투스, 페니키아, 이집트, 바빌론 등을 23년간이나 떠돌며 학식을 쌓았다.

-수를 탐구하는 피타고라스 학파를 만들다.
피타고라스는 60세 전후에 들어서서 길었던 편력생활을 마쳤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사모스에 학교를 세우고 싶어 했으나 사모스 섬의 독재자 폴리크라테스와 갈등을 빚어 이탈리아 남부에 위치한 크로톤으로 이주했다. 피타고라스는 이곳에서 크로톤 학교를 세웠는데 이것은 흔히 피타고라스 학파라고 부르며 이들은 수, 윤회설 등을 연구했다.

-최초의 여성수학자와 결혼하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굉장히 폐쇄적인 결사체로 피타고라스의 제자들은 학회에서 배운 것은 모두 비밀에 부쳤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비밀스러운 집단이기는 했지만 동시에 개방적인 성격도 지녔다. 당시 그리스에서 여성은 남성과 같은 교육을 받을 수 없었고 사회적으로 발언권을 가질 수 없었는데 피타고라스는 여성들도 수제자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인 테아노와 결혼을 했다. 테아노는 역사적인 기록에서 최초로 등장한 여성 수학자로 황금분할의 법칙(1:1.618로 가장 완벽한 아름다움을 주는 비율)을 정립했고 수학, 물리, 의학 등에 대한 연구를 남겼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증명하다
가장 잘 알려진 피타고라스의 업적으로는 우리가 중학교 때 배우는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있다. 직각삼각형에서 ‘직각을 끼고 있는 두 변의 제곱의 합은 빗변의 길이의 제곱과 같다(밑변의 제곱+높이의 제곱=빗변의 제곱)’가 피타고라스 정리의 내용이다. 이러한 직각 삼각형의 정리는 피타고라스 이전 시대에 이미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에 알려져 측량에 사용되었지만 이것을 증명한 것은 피타고라스(혹은 피타고라스 학파)가 처음이다. 일설에 의하면 그가 인도에 깔려있는 돌을 보고 직각삼각형의 원리를 증명해냈다고도 하고 피타고라스 학파의 비밀스러운 성격 상 학파의 다른 학자가 발견한 것일 수도 있다고 한다.

-‘만물은 숫자다’, 유리수에 대한 강한 믿음
만물은 수라고 주장했던 피타고라스와 그의 제자들은 우주의 근본을 수라고 믿었다. 수에 대한 이들의 믿음은 마치 종교와 유사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정수’와 정수들의 비(분수)로 세상의 모든 것을 나타낼 수 있다고 믿었고 이를 이용해 사람이나 음악 등을 표현했다. 그들에게 1은 모든 수의 신성한 창조자였고 첫 번째 짝수인 2는 여성(음)이었다. 또 1과 2의 조합으로 나온 수인 3은 남성(양)을 상징했다. 그런데 학파에 소속되어 있던 히파수스라는 자가 정수의 비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리수(√2)를 발견하고 외부에 퍼뜨리자, 이들은 분노하여 그를 추방하는 폐쇄적인 모습도 보였다.

-정치적인 세력에 의해 살해당하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점차 세력을 확대하고 크로톤의 정치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피타고라스 학파는 선망의 대상이자 질시의 표적이 됐다. 또한 폐쇄성 때문에 크로톤 시민들의 반감을 사기도 했다. 급기야 피타고라스 학파의 정치적인 반대파에 공격을 받게 되고 분노한 크로톤 시민들은 학교에 불을 질렀다. 피타고라스 학파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 부녀자들을 배에 태워 시실리로 피난시키고 피타고라스를 호위하면서 메소포타미아 쪽으로 도망을 갔다. 피타고라스는 메타폰톰까지 피신했으나 결국 붙잡혀 살해당했다.

피타고라스의 사후에도 그의 추종자들은 200년간 그리스 전역에 흩어져서 활동했다. 피타고라스의 사상은 그가 죽은 후에도 그리스의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쳐 아낙시만드로스(우주론과 인류의 기원을 연구한 철학자), 아낙시메네스(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주장했던 철학자)같은 학자들이 탄생했다. 또한 기원전 1세기 경에는 피타고라스의 정신을 계승한 신피타고라스학파가 생기기도 했다.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했던 가치를 숨기고 자신의 제자들과만 공유했던 피타고라스. 그가 직접 남긴 저작은 없지만 그의 사상과 연구는 그리스 전역으로 퍼져 많은 연구자들을 배출했으며 교과서에도 등장할 정도로 그의 숨결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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