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차기 정권의 몇 가지 관문

   일본 작가 기타가와 야스시(喜多川秦)는『편지가게』에서 “사람이 꿈이나 목표를 가지면 눈앞에는 반드시 벽이 나타난다. 당연히 큰 꿈을 가진 사람에게는 큰 벽이 나타난다.”라고 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박근혜 당선인과 차기 정권이 순항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닥칠 몇 가지 관문을 잘 통과해야 한다. 특히 임기 초반의 관문에 대한 대처가 중요하다. 필자가 보기에 그 관문은, ① 요직에 대한 인선 ② 대통령 취임사 ③ 공직사회에 대한 일성(一聲) ④ 금년 4월 재·보선 ⑤ 제1야당 대표와의 첫 회동 등이다.

   첫째, 요직에 대한 인선이다. 율곡 이이(李珥)는 “훌륭한 군주는 훌륭한 신하를 두기 마련이다.”라고 했다.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인사의 중요성을 잘 알면서도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자리를 노리는 사람은 많은데, 막상 쓰려고 하면 적임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통령이 당리당략에 빠진 나머지 좁은 인재 풀 속에서 사람을 고르려는 탓도 크다. 박근혜 당선인은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무래도 국무총리의 인선이 가장 중요하다. 더욱이 차기 정권의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대신해 내치를 이끌 가능성이 높다.

   국무총리에 대한 정답은 없지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역시 국정의 맥을 잘 짚고 국정 정반을 잘 통합·조정할 경륜과 리더십이다. 꼭 정치인이나 관료 출신일 필요는 없지만, 가능하면 백면서생은 피해야 한다. 이런 전제 위에서 출신 지역 따위를 살펴보아야 한다. 과거처럼 ‘대독 총리’에나 어울릴 사람을 앉혀 놓으면 대통령의 과부하(過負荷)를 막을 길이 없다. 국무위원에 대한 인선도 마찬가지다. 관료사회를 잘 꿰뚫어 보고 관료사회에 끌려가지 않을 인재를 뽑아야 한다. 탕평 인사를 하되 인선의 원칙과 기준을 합리적으로 해야 한다.

   둘째, 제18대 대통령 취임사이다. 대통령 취임사는 정권의 가늠자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관찰 대상이다. 적어도 전문가들은 취임사의 내용과 그 이후의 실제 국정 수행의 상관성에 대해 비평을 가할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塩野七生)는 “날카롭고 깊은 통찰을 적확하게 표현하는 능력은 다음에 올 일을 더욱 날카롭고 깊이 통찰하게 해 준다.”라고 했다. 대통령 취임사는 대개 당위적 방향과 미사여구(美辭麗句)로 가득 차 있다. 천하의 인재들이 많이 투입되어 명문(名文)을 만들어내곤 하는 것이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미사여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차기 정권의 색깔이 잘 드러나야 한다는 점이다. 정권의 국정 철학과 원리가 잘 망라되어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시대정신에 상응하는 내용이기를 희망한다. 중장기적인 국가 비전도 반드시 제시되어야 한다. 그래서 공직자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바이블로 삼을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도와 격조가 높아야 한다. 또한 실의에 젖어 있는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국민 통합적인 내용이 많이 담겼으면 한다. 그렇다고 과잉 의욕은 금물이다. 향후에 족쇄가 되기 때문이다.
   셋째, 공직사회에 대한 첫 번째 메시지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싫든 좋든 공직자들과 함께 국정을 맡아야 한다. 청와대 참모와 장·차관 그리고 여당 국회의원들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공직자들의 적극적인 뒷받침 없이는 국정에 성공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 몽골 제국의 칭기즈 칸(Chingiz Khan)은 “지도력의 첫 번째 열쇠는 자기 절제이다. 자만심을 삼키지 못하면 남을 지도할 수 없다. 자만심을 누르는 것은 들판의 사자를 이기는 것보다 어려우며, 분노를 이기는 것은 가장 힘센 씨름꾼을 이기는 것보다 어렵다.”라고 했다.

   칭기즈 칸의 말이 아니더라도 대통령은 공직사회에 대해서도 겸손함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관료주의에 대해서는 경계해야 하지만, 공직자들의 애국심과 역량을 믿고 사기 진작을 해야 하며, 같은 팀원이라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 선출된 권력이라고 해서 대통령이나 그 참모들이 점령군처럼 행세하면 공직자들의 능동적인 업무 수행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취임 이후 정부 부처의 첫 업무 보고 때에 있을 한 마디가 주목된다. ‘공직자들에 대한 신뢰를 언급하면서 다 함께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일하자.’는 취지이면 좋겠다.

   넷째, 금년 4월의 재·보궐선거이다. 이 선거는 차기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라고 하기에는 이르지만, 어느 정도는 민심의 동향을 파악하는 데 참고가 될 만하다. 만일 여당의 성적표가 좋지 못하면 차기 대통령에게 적지 않은 짐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뛰어난 지도자였던 웨슬리 브랜치 리키(Wesley Branch Rickey)는 “불운은 뜻밖에 찾아오는 반면, 행운은 그것을 계획한 사람들에게만 찾아온다.”라고 했다. 차기 정권과 새누리당이 또 다시 행운이 찾아올 것이라 믿고 방심하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대통령이 이 선거에 개입할 여지는 없지만, 차기 정권의 임기 초반에 실시된다는 점에서 선거 결과는 앞의 세 가지 선택지에서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누리당이 국민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도 승패의 중요한 관건이다. 지금 새누리당은 민주당 등 야권에 비해 더 높은 지지도를 받고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야권의 지리멸렬에 따른 반사 이익일 뿐이다.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인데, 당장은 어렵더라도 그런 노력이라도 보여야 신뢰를 회복하고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제1야당 대표와의 첫 회동이다. 중국 청나라의 명황제 강희제(康熙帝)는 “힘으로 지키는 자는 홀로 영웅이 되고, 위엄으로 지키는 자는 한 나라를 지킬 수 있지만, 덕으로 지키는 자는 천하를 세울 수 있다.”라고 했다. 제왕보다는 권력이 다원화된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대통령에게 더 적합한 경구(警句)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이 얼마나 덕이 있고 포용적인가는 대야 관계에서 잘 드러난다. 박근혜 차기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지도 체제가 갖추어지고 나면 금년 상반기 중에 민주당 대표와 첫 회동을 가질 전망이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 차기 대통령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어떤 말을 하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는 어디까지나 수평적 관계이다. 그러나 대통령중심제의 속성상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아랫사람 대하듯이 권세를 부리기가 쉽다. 실제로 그런 대통령들이 많았다. 그래서 대통령과 야당 대표 간의 이른바 영수회담이 끝난 후에 양자 관계가 오히려 악화되는 경우도 빈번했다. 특히 첫 회동에서는 대통령의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을 시점이기 때문에 더 더욱 이 점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필자는 박근혜 당선인이 지금부터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조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민심에 순응해야 한다. 박근혜 당선인은 작년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국민 행복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국가보다는 국민을 먼저 생각하겠다는 요지의 발언도 했다. 올바른 방향 설정이었다. 물론 대통령은 국리민복을 두루 살펴야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행복에 귀결되는 방향이어야 한다. 불행히도 많은 권력자들은 국민이나 국가를 운운하면서도 대통령 개인과 정권의 이익을 먼저 취하는 경향이 많다는 점을 늘 상기해야 한다.

   둘째, 민심에 순응하기 위해서는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노자(老子)는 “가장 이상적인 생활 태도는 물과 같은 것이다.”라고 했다. 국가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은 물처럼 유연한 사고와 태도를 가져야 한다. 정체성과 원칙을 존중하면서도 그것을 운영할 때는 유연한 자세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주변에 유연한 사람들이 많아야 하고, 그들의 얘기에 귀를 잘 기울여야 한다. 물론 대통령은 참모들의 조언을 취사선택할 줄 아는 선견지명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 선견지명도 마음이 열린 상태에서 가능한 법이다.

   셋째, 위기에 강해야 한다. 대통령에게는 위기가 아닌 때가 없다고 할 만큼 위기의 연속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덕목 중에서는 위기관리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필자가 누차 언급한 대로 위기관리 능력은 박근혜 당선인의 트레이드마크이다. 하지만 앞으로 박 당선인에게 나타날 위기는 지금까지와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성질의 위기이다. 따라서 박 당선인은 자신의 위기관리 능력을 배가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의외로 위기가 빨리 찾아올 수도 있다. 위기에 대처할 매뉴얼을 미리 터득해 놓아야 하는 것이다.

   넷째, 작은 일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대(大)는 소(小)를 겸한다.”는 일본 격언이 있다. 앞에서 언급한 위기도 작은 일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정책 전개에 있어 그 방향이 아무리 옳더라도 그 과정이 충실하지 못한다면 성공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매사 돌다리를 두드리는 심정으로 임해야 한다. 또한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많은 관심을 집중하기 마련이다. 자신의 언행에 각별히 유념해야 하고 참모들에게도 늘 경고음을 보내야 한다. 비유컨대 대통령은 사자의 용맹과 여우의 지혜를 두루 갖추고 있어야 한다.

   돌궐(투르크) 제국의 명장이었던 톤유쿠크는 “성(城)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구중궁궐(九重宮闕)인 청와대에 너무 갇혀 있으면 세상 물정을 오히려 잘 모를 수가 있고 안주하기 십상이다. 고급 정보를 독점한다고 생각해서 청와대 바깥의 쓴 소리를 멀리할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실제로 역대 대통령들이 그랬다. 박근혜 차기 대통령은 글로벌 시대와 지식정보 시대 그리고 복합 다원 시대의 지도자답게 보다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리더십을 구현하기를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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