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부의 미래』에서 “새로운 부(富) 창출 시스템은 자주 나타나는 것도 아니며 단독으로 오지도 않는다. 새로운 삶의 방식, 즉 문명을 동반한다.”라고 말했다. 신년 벽두(劈頭)부터 몇몇 민간연구소들은 “3~4년 후에 대한민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 달러에 도달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주지하듯이 3만 달러는 선진국의 기준선이다. 이것만으로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물질적으로는 그렇다는 얘기다. 그런데 당연한 말이지만, 선진국은 저절로 올 수가 없다.

   3만 달러든 4만 달러든 대한민국의 선진화가 가능한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현주소를 살펴봐야 한다. 먼저 대한민국의 강점 중의 하나로서 역동성을 꼽고 싶다. 한류(韓流) 열풍을 보노라면 한국인에게 남다른 DNA가 있는 것 같다. 신명 말이다. 게다가 선배 세대와는 달리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으로 무장한 젊은 세대의 당당함은 작금의 글로벌 시대에는 제격이다. 물론 전쟁의 폐허와 분단의 장벽을 뚫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한강의 기적’ 자체가 대한민국이 얼마나 위대한 나라인가를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는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가장 큰 난관은 ‘성숙 경제’이다.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선전(善戰)한다 해도 1~2퍼센트 성장률을 넘기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사회안전망과 복지제도가 잘 구비되어 있는 편도 아니다. 말하자면 대한민국이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려면 더 많은 성장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더 폭넓은 분배를 위해서도 그렇다. 이를 위해서는 선진국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후발 개발도상국들의 추격을 따돌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물론 오늘날 경제 성장은 주로 기업의 몫이다. 대한민국이 1만 달러에 이르기까지는 경제개발계획 등 정부의 역할이 적지 않았지만,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로 뛰어오르는 데는 민간이 중심적으로 움직였다. 특히 대한민국이 이만큼이라도 성장한 데는 삼성 등 몇몇 대기업들의 공헌이 크다. 하지만 극소수 재벌 기업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더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독과점 구조에 변화가 와야 한다. 기존 글로벌 기업들의 청렴성과 투명성 강화도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앞으로 나아가려면 일단은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놀고먹는 사람이 많다면 일하는 사람들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고, 근로윤리를 진작하기 어렵다. 작금의 성숙 경제는 곧 생력(省力) 지향의 경제이다. 인건비 절감을 위한 효율 중심의 경제인 것이다. 고용을 줄이거나 인건비가 싼 비정규직 중심의 경제로 이행하고 있는데, 결국은 사회적 부담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대한민국이 지금 이런 상황이다. 해법은 고통 분담이다. 대기업 주주와 고임금 노동자들의 양보가 관건인데,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비슷한 맥락에서 저출산 고령화의 문제가 있다. 그 속도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이 필수적이지만, 대세를 막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이를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거기다 대한민국은 인구밀도가 너무 높아 인구 감소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고령자들이 과거에 비해서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점이다. 요컨대 경륜이 출중한 장·노년층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면 전화위복이라는 취지이다. 공공 부문이 정년 연장에 솔선수범해야 한다. 그러면 사기업도 뒤따라갈 것이다.

   21세기 글로벌 경제는 곧 지식 경제이다. 경쟁력의 원천이 창의력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창의력이 뛰어난 양질의 인재들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따라 선진국으로의 도약 여부가 판가름 난다는 뜻이다. 미국처럼 세계 도처의 글로벌 인재들을 끌어 모을 형편도 아니기 때문에 더 더욱 국내에서 그런 인재들을 양성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교육 패러다임으로 이 일이 가능하겠는가? 시대 흐름에 맞게 보다 독특하고 창의적이며 도전적인 인재들을 키워내는 방향으로 교육 제도와 시스템을 재구축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지식 경제 부문에 종사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는 ‘산업구조의 고도화’가 선진국으로 가는 첩경인 양 인식해 왔다. 1차 산업보다는 2차 산업, 2차 산업보다는 3차 산업이 더 중요하다는 세뇌를 받아 온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 모두가 나름대로 소중하고 그래서 산업 간의 균형이 중요하다. 각자의 소질과 여건에 따라 직업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학력-직종-기업에 따라 차별이 극심한 상태에서는 산업구조의 정상화가 실현되기가 어렵다.

   노사관계의 안정은 선진국으로 가는 데에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이다. 과거와 같은 무분별한 파업은 줄어들었지만, 노사관계는 여전히 후진적이다. 노사 간 불신과 제로섬 게임의 관성이 남아 있다. 한 가지 아이러니는 근로조건이 양호한 대기업의 노동조합은 단결력과 교섭력이 강한 반면에, 근로조건이 열악한 중소기업에서는 노동조합을 결성하지 않았거나 이름뿐인 노동조합이 많다는 점이다. 이러한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격차는 대한민국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수직 하청 관계가 얼마나 일방적인가를 방증해주고 있다.

   대기업 노동조합의 임금 인상 요구가 무리하게 비쳐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가계가 부담하는 사회적 비용이 대단히 높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가계가 휘청거릴 정도의 높은 교육비와 주거비에 대한 개선 없이는 ‘만인의 만인을 위한 투쟁’이 남발하는 현상을 막을 수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가계 부채는 900조 원을 상회하고 있다. OECD 국가 평균보다 훨씬 높은 수치이다. 사회적 비용의 경감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한 까닭이다.

   19세기 말에 미국 행정부의 재무장관을 지낸 조지 B. 코틀유(George B. Cortelyou)는 “어떤 국가든 가장 큰 자산은 국민의 정신이다. 또한 어떤 국가든 위협할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은 정신의 붕괴다.”라고 말했다. 민주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원동력은 시민정신(Citizenship)이다. 시민정신은 시민의 권리와 책임을 아우른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시민정신의 재무장이 필요하다. 적어도 법질서 및 기초질서의 준수, 보편적 복지 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성실한 납세 의무의 이행은 필요조건이다.

   같은 맥락에서 국민 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복합 다원 시대는 사람마다 이해관계는 물론 가치관과 취향이 무척 다양하다. 그래서 개성을 존중하고 차이를 용인하는 사회 풍토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지역-계층-세대 등에 따라 인식의 편차가 현격히 크다. 이런데다 민주화가 이뤄진 지 25년이 넘었는데도 토론과 타협의 관행이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양 극단의 충돌은 사회 통합을 저해하기 마련이고, 이것은 궁극적으로 국가 공동체의 평화와 순조로운 발전을 방해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의 선진화에 가장 큰 걸림돌은 정치와 행정이다. 앨빈 토플러는 앞의 책에서 “사회는 제 시간에 달리는 제도가 필요하다. 경제는 너무나 빠른 속도로 달리는데, 사회의 다른 주요 제도들이 한참 뒤로 처진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라고 강조했다. 또 “현재의 정치 시스템은 지식 기반 경제의 엄청난 속도와 고도의 복잡성을 다룰 수 있도록 설계되지 않았다.”라고 덧붙였다. 민주주의의 모범 국가라 할 미국 정치 시스템이 이러한데, 하물며 대한민국 정치는 두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며칠 전 국회는 2013년도 예산안을 의결했다. 몇몇 국회의원들이 국리민복보다는 자기 지역구 예산 챙기기에 몰두했다는 비판이 무성하다. 이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국회의원들 스스로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다짐한 것이 엊그제인데, 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약속을 위반했다. 행정부 역시 국민의 혈세를 알뜰히 사용하느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조셉 슘페터(Joseph A. Schumpeter)는 “재정을 이해하고 판독할 수 있는 사람은 국가의 운명을 예측할 수 있다.”라고 했는데, 이런 국회와 행정부로 선진국을 지향할 수 있겠는가?

   앨빈 토플러의 주장처럼 대한민국의 국회, 정당, 행정부를 글로벌 시대와 지식 정보 시대에 맞게 개조해야 한다. 당면 문제점들을 개선하는 일이 급선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보다 큰 차원의 대수술이 불가피한 것이다. 지나친 물량(物量), 하드웨어, 결과(성과) 및 속도 중심의 정치와 행정을 지양해야 한다. 정치인과 공무원들의 소통방식도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보다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리더십이 요구된다. 대리인이 주인 위에 군림하는 주객전도 현상만큼은 사라져야 할 구시대의 유물임을 명심해야 한다.

   앞에서 본 것처럼 대한민국의 선진화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하기에 따라서는 충분히 가능한 목표이기도 하다. 우리 스스로 거기에 맞는 가치관과 제도와 행동양식 따위를 구비한다면 그리 꿈같은 일은 아니다.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스스로 일어서되 더불어 사는 대한민국’이라면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 자력갱생과 상부상조의 미덕을 함양하는 데 박근혜 당선인이 앞장서야 한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각 연주자가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공감과 통합의 리더십을 구현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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