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데이비슨이란 회사의 CEO를 지낸 리치 티어링크(Rich Teerlink)는 “뭔가 이루었다고 생각한 바로 그날, 우리는 실패에 대한 걱정을 시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당선인의 처지를 잘 나타내주는 금언이 아닐 수 없다. 박 당선인은 앞으로 끝없는 선택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용이하거나 간단한 선택지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딜레마이기 십상이다. 그 하나하나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참으로 대단한 통찰력과 결단력이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아무나 대통령이 될 수 없는 현실이 아니겠는가!

   필자가 생각하기에 박근혜 당선인에게 다가올 수 있는 딜레마는 다음과 같다. ① 대북 정책에서 대화를 중시할 것인가 아니면 원칙을 견지할 것인가, ② 미국과의 관계에서 동맹을 우선할 것인가 아니면 중국 등 주변 국가들의 입장까지 균형적으로 고려할 것인가, ③ 대야 관계에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타협을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여대야소의 지형을 활용해 정면 돌파할 것인가, ④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과의 관계에서 당의 재량에 맡길 것인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지도력을 발휘할 것인가 등이다.

   첫째, 대북 정책이다. 역대 정부에서 대북 정책은 대화와 교류를 특징으로 하는 ‘햇볕 정책’과 장기적으로는 북한의 개혁·개방을 염두에 두되 단기적으로는 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 말리지 않고 원칙적으로 접근하는 정책으로 대별할 수 있다. 전자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대표적이고 후자는 이명박 정권의 대북 정책 기조였다. 보수 진영에서는 햇볕 정책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는커녕 오히려 남한의 안보 해이를 불러왔다는 지적을 하고 있고, 진보 진영에서는 보수 정권의 대북 정책이 북한의 모험을 불러오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이 대선 국면에서 발표한 대북 정책의 요체는 남북 간 신뢰와 균형, 북한의 비핵화이다. 박 당선인은 이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고 부르고 있다. 앞에서 예시한 두 극단의 정책 사이에서 균형을 찾겠다는 취지이다. 남북한의 신뢰 회복 없는 무조건적인 지원(‘퍼주기’)은 가짜 평화이고, 신뢰를 위한 대전제로서 튼튼한 안보를 꼽고 있다. 여기까지는 이명박 정권의 대북 정책과 비슷한데, 다만 박 당선인은 남북 대화에 전제조건을 달지 않겠다는 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박근혜 당선인의 대북 정책은 대체로 바람직한 방향이라 평가할 수 있지만, 과연 뜻대로 이루어질지는 미지수이다. 취임 1주년을 맞은 김정은 정권의 기반은 아직 불안하기 짝이 없다. 따라서 김정은 정권이 쓸 수 있는 가장 유효한 카드는 내부의 모순을 외부로 돌리는 길이다. 미사일 발사는 가장 손쉬운 선택이지만, 앞으로는 더 강한 도발을 해올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과연 대화에 응할 것인지는 의문스럽다. 이럴 때 박 당선인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지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둘째, 미국과 중국이라는 이른바 G2와의 관계이다. 미국은 대표적인 우방 국가이고, 중국은 가까운 이웃인 데다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무역 파트너이다. 1953년 휴전협정 이후에 대한민국의 전통적인 외교·안보 노선은 대한민국-미국-일본의 삼각동맹이었다. 1980년대 후반의 탈냉전 이후에는 삼각동맹을 원칙으로 하면서도 다각적이고 유연한 외교관계가 수립되었다.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북한을 의식하고 지지자들의 분위기를 감안해서 미국과의 전통적인 우방관계에 변화를 주고자 했다. 중국과의 관계도 미국 못지않게 중시했다.

   상식적으로는 미국 및 중국과 두루 잘 지내는 것이 정답일지 모른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이 G2 국가로서 이해관계가 많이 다르고, 특히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라는 견지에서는 충돌의 소지마저 있다는 점이다. 북한에 대한 입장 역시 마찬가지다. 말하자면 대한민국은 두 강대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하는 것이 맞을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어떤 선택에 몰릴 수밖에 없는 어려움이 있다. 여기에 일본의 동향도 심상치가 않다. 한반도 상공에 국수주의라는 망령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미국과는 현재의 동맹관계를 포괄적인 전략 동맹으로 심화시키고, 중국과는 현재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강화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또 일본에 대해서는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강조했다. 공교롭게도 네 나라 모두 새로운 지도자를 맞이하거나 2기 집권기이다. 북한 김정은 정권도 1년밖에 안 됐다. 대단히 미묘한 시점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최고 외교관인 박 당선인의 외교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박 당선인이 외교·안보에 심혈을 기울이기 위해서는 국무총리와의 역할 분담이 필수불가결하다.

   셋째, 대야 관계이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은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안정 과반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는 박근혜 당선인이 신승(辛勝)했다. 설령 대승을 거두었다 하더라도 야당은 국정의 주요한 파트너로서 존중해야 하는데, 하물며 이런 상황에서는 더 더욱 야당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 그렇지 않아도 대한민국 대통령은 단임제이기 때문에 하기에 따라서는 야당과 좋은 파트너십을 형성할 수가 있다. 물론 이해관계가 다르지만 정치력을 발휘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이명박 정권이 어려움을 겪은 근본적인 이유는 야당과의 관계 설정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500만 표라는 압도적인 표 차이로 승리한 데 고무되어서인지, 아니면 보수 진영의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화법에 매몰되어서인지 과거 10년에 대한 뒤집기가 심했고, 야당을 국정의 동반자로 여기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빌미가 되어 대대적인 촛불 시위에 직면했다. 정권의 임기 초반에 과도한 투쟁을 전개한 야권의 접근도 잘못이지만, 정권에게 야당과의 관계 설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박근혜 차기 정권도 이런 일을 겪을 가능성을 배제하기가 어렵다.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은 민주화 운동 등을 통해 강한 전투성을 보유하고 있다. 이 전투성이 여당일 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지만, 야당 시절에는 빛을 발하곤 한다. 그리고 상당수 야권 사람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 당선인의 집권을 마음속으로 용납하지 않고 있다. 지금은 패닉 상태에 빠져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전열을 재정비할 것이다. 이들에게 지나치게 끌려가서도 안 되겠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정권 반대 전선이 형성되는 걸 막아야 한다.

   넷째, 새누리당과의 관계 설정이다. 과거에는 대통령이 여당의 총재를 겸직했기 때문에 여당에 대한 통제가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과거처럼 권위주의 통치가 가능한 시대도 아니다. 그렇다고 여당을 방치할 수도 없는 일이다. 고위 당정회의, 당 대표와의 주례 회동 등을 통해 여당에 주문을 할 수도 있겠지만, 국정 현안을 논의하기에도 바쁜 편이다. 하나의 정권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정부도 잘 해야 하지만, 여당의 역할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지난 18대 국회 때 새누리당은 집권 여당으로서 청와대에 끌려 다닌다는 세간의 비판을 많이 받았다. 여당으로서 정부에 협력할 것은 협력하되 시중의 쓴 소리를 정부에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눈치를 보느라 그렇게 하지 못했다. 국회 운영에 있어서도 안정 과반 의석이었으면서도 계파 간 갈등에다 지도부의 역량 부족으로 여당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박근혜 당선인은 새누리당과 수평적 파트너십을 형성하면서도 새누리당이 여당으로서의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 밖에도 인사(人事)에서 탕평책을 구사할 것인가 아니면 측근이나 보수 진영 위주의 인사를 할 것인가, 정부 재정의 운용에서 확대 지향인가 아니면 축소 지향인가, 법질서 확립을 보다 유화적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엄격하게 할 것인가의 딜레마가 있다. 이 모두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이런 딜레마를 쉽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정의 원칙과 전략을 분명히 세우되 문제 해결 과정에서는 유연한 태도와 고도의 정치력을 구사해야 한다. 이 정치력에는 반대 세력을 설득하고 견인하는 능력과 함께 다른 의견을 포용하는 아량도 포함된다.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는 “지도자는 지옥으로 가는 길을 숙지하고 있어야 대중을 천국으로 이끌 수 있다.”라고 했다. 박근혜 당선인은 자신에게 놓인 향후 5년이 험로라고 생각하고 이를 돌파할 지혜를 잘 가다듬어야 한다. 박 당선의 양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일을 자신이 다해야 한다는 듯이 강박 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또한 시간의 한계 때문에도 하고 싶은 일을 모두 하기 어렵다. 따라서 인수위원회의 역할을 국정의 우선순위와 로드맵을 짜는 데 국한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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