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남자(淮南子)』에는 “도(道)는 아주 쉬운 곳에 있건만 굳이 어려운 데서 찾으며, 효험은 가까운 곳에서 기대할 수 있건만 굳이 먼 곳에서 찾으려 한다. 그러기에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박근혜 당선인이 명심해야 할 경구(警句)가 아닐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진리는 가까이에 있고, 박근혜 차기 정권이 순항하기 위해서는 보통 사람들도 생각하는 세상의 이치를 얼마나 잘 준수하느냐에 달려 있다. 바꾸어 말해 역대 정권들의 실패는 의욕은 넘쳤는지 몰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에 못 미쳤기 때문이 아닐까?

 
   박근혜 당선인은 우선 대통령이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일을 분간해야 한다. 흔히 제왕적이라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임기 5년이란 시간도 레임덕을 감안하면 대단히 짧은 시간이다. 권력을 즐기기에는 적당한 시간이지만, 일을 하기에는 그리 넉넉한 시간이 아니다. 일의 우선순위를 잘 정해서 임기 초반부터 불협화음 없이 매끄럽게 추진해야 하리라. 이런 점에서 여기에 적합한 사람들 중심으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 순리이다.

   우리 국민들 가운데 상당수는 박근혜 차기 정권에 거는 기대가 적지 않다. 박근혜 당선인은 과거 대통령들과는 달리 최소한 자신의 약속만은 지키리라는 믿음이 팽배하다. 박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적지 않은 약속들을 했다. 그 중에는 필요성이나 타당성이 있는 것들도 있겠지만, 현실성은 떨어지지만 선거에 이기기 위해 부득이 발표한 공약들도 있을 터이다. 설령 그 모든 공약들에 실효성이 있다 하더라도 예산과 시간의 제약으로 실천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다소 마음의 부담이 되더라도 그 취사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부터 취임하기 전까지도 각계의 요구들이 봇물을 이룰 것이다. 게다가 정부 각 부처에서도 현안 보고를 하면서 이런저런 주문들을 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는 국리민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제들도 있겠지만, 때로는 부처이기주의에 따른 무리한 사안들도 충분히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에 휘둘리게 되면 임기 내내 관료사회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박근혜 당선인의 통찰력이 더없이 필요해진다. 관료사회와의 파트너십을 잘 형성하되 관료주의의 맹점을 꿰뚫어보아야 국정을 잘 이끌어갈 수 있다.

   또 하나 박근혜 당선인에게 주문하고 싶은 점은 지나친 하드웨어 중심의 발전 전략을 지양하라는 것이다. 방찬영 카자흐스탄 경제경영전문대학(KIMEP) 총장은 “정치인들은 보이지 않는 데 투자하는 것보다 눈에 보이는 건물에 투자하길 좋아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듯이 이것은 동서고금을 관통한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하드웨어 측면에서 눈부신 발전을 해 왔다. 부분적으로는 여전히 하드웨어의 확충이 필요하지만, 크게는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나 휴먼웨어 중심의 발전 전략을 강구할 때이다.

   그럼에도 유력자들로부터 나오는 대부분의 요구들이 하드웨어 중심이다. 그렇지 않아도 여러 지방 공항, 월드컵 경기장 등 많은 하드웨어가 애물단지로 전락해 있다. 시화호와 새만금 간척 사업도 비슷한 양상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동남권 신공항을 공약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공약이라고 해서 지키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국가의 중장기적 미래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침체에 빠져 있는 건설업의 활성화를 위해 일정하게는 하드웨어 건설이 필요하겠지만, 순차적인 구조조정이 선결 과제임을 박 당선인은 잊어서는 안 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는 “험한 언덕을 오르려면 처음에는 서서히 걸어야 한다.”라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박근혜 당선인은 과잉 의욕과 조급증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지금이야말로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5년 국정의 밑그림을 찬찬히 그릴 때이다. 당파성과 진영 논리를 넘고 자신의 고정관념을 타파하며 오로지 시대정신과 국민의 염원에 기초하여 국정에 대한 기본 설계를 해야 한다. 어쩌면 자신이 견지해 온 그동안의 정치 철학마저도 새 용광로에 녹아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필자는 박근혜 차기 정권이 무엇보다도 ‘따뜻한 정부’가 되기를 소망한다. 대한민국의 많은 국민들은 지금 지쳐 있다. 물질적으로도 어려운 서민들이 많지만, 정신적으로도 황폐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대한민국이 비교적 시대 흐름에 잘 순응해 왔고, 각종 경제 지표 또한 그 어떤 나라와도 견주어도 손색이 없지만,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국민은 참으로 적은 편이다. 이른바 ‘행복지수’는 우리나라의 경제력에 훨씬 못 미친다. 엊그제 미국갤럽의 발표로는 대한민국의 행복지수가 97위로 나타났는데, 대단히 심각한 실정이다.

   물론, 따뜻한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국정 기조가 그런 방향으로 나타나야 한다. 사회복지와 사회안전망의 확충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다. 예산의 뒷받침도 따라야 하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 예산이 효율적으로 쓰이고 있는 시스템인지를 잘 점검해야 한다. 더 중요한 일은 대한민국 전반이 호혜와 협력의 정신으로 충만해지는 것이다. 적어도 대통령과 정부는 경쟁지상주의라는 일각의 흐름을 제어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박근혜 당선인은 ‘국민 행복 시대’를 주창한 만큼 그 참뜻을 잘 새겨 반드시 실천하기를 바란다.

   지금 박근혜 당선인은 인기 절정에 있다. 언론도 그렇고 많은 국민들의 눈과 귀도 박 당선인의 행보에 쏠려 있다. 그래서 쓴 소리보다는 용비어천가를 부르는 측근들이 많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에 박 당선인 주변에는 ‘아니오!’라고 말하는 참모들이 별로 없다는 지적들이 많았다. 정치권력의 실패는 맨 먼저 간신배들의 감언이설에 권력자가 속아 넘어감으로써 비롯된다는 사실을 박 당선인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설령 좋은 뜻의 진언이라 하더라도 시시비비를 잘 가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최고 지도자는 고독한 법이다.

   이 시대를 뭐라고 지칭하든, 글로벌 시대든, 지식정보 시대든,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시대정신을 꼽으라면 그것은 바로 다원성이다. 다양한 가치관과 이해관계가 공존하는 시대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필요한 덕목이 화이부동(和而不同) 혹은 똘레랑스(Tolerance)이다. 이 덕목은 보통 사람들에게도 필요하지만, 지도자가 가장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인재들을 등용해야 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해야 한다. 심지어 야당 등 반대자들의 얘기에도 귀를 기울일 때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사실 대통령 권력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문민 시대라 하더라도 제왕적 대통령제가 유지되는 이상, 그 개연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삼권분립이 제도화되어 있고 언론과 여론의 감시가 상시적으로 있지만, 그런 유혹에 빠지기 십상인 것이다. 날이 갈수록 행정부 우위 시대의 추세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아무리 언로가 열려 있다 하지만, 최종 결정권이 대통령에게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대통령에게 매달린다. 따라서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이 국민의 권력임을 망각하여 권력을 남용하기 쉽다.

   노자(老子)는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삶는 것과 같다.”라고 했다. 국가 지도자는 늘 신중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아무리 권력이 다원화되어 있는 시대 환경이라 하더라도 대통령과 정부의 잘못된 결정이 국가적으로 얼마나 큰 폐해를 초래할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노자의 금언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런데 대통령은 다양한 정보들을 접하기 때문에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크다. 하지만 그 정보마저 가공된 정보인 데다 구중궁궐인 청와대에 있으면 세상이 오히려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시경(詩經)』에는 “처음엔 누구나 잘하지만, 끝까지 잘하는 예는 드물다.”라는 말이 나온다. 또 조지 마셜(George C. Marshall) 장군은 “진정 위대한 지휘관은 모든 난관을 극복해야 함을 기억하라. 전투는 단지 극복되어야 하는 어려움의 연속일 뿐이다. 장비 부족, 식량 부족 등 무엇 무엇이 부족하다는 말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승리함으로써 자기 능력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도자이다.”라고 했다. 박근혜 당선인에게 가장 중요한 리더십의 덕목을 손꼽으라면 위기관리 능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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