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심재민 기자 | 최근 발생한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이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문제는 이와 유사한 영아 살해 사건과 그런 가능성이 잇따라 드러나면서 심각성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유사 범죄를 막기 위해 ‘유령아동’ 보호 체계의 구멍을 막아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유령아동이란 병원에서 태어난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는 되지 않은 영아 및 아동을 말한다. 이러한 유령아동은 태어난 흔적이 서류상으로 아무것도 없기때문에 살해 및 학대 범죄가 발생해도 정부 당국, 지자체 등 수사기관에서 알아채기가 어렵고, 유치원이나 학교에도 갈 수 없기 때문에 보호 감시 체계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최근 이러한 유령아동들을 상대로 한 살해, 유기된 사실이 잇따라 드러나면서 아동학대 예방체계의 '구멍'이 여실히 드러났다.

유령아동에 대한 사회적 보호 필요성을 대두 시킨 것은 최근 발생한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이다. 지난 22일 경찰에 따르면 경기남부경찰청은 전날 영아살해 혐의로 30대 여성 A씨를 긴급체포해 조사 중이다. A씨는 2018년과 2019년 각각 아기를 출산하고 곧바로 살해한 뒤 자신이 살고 있는 수원의 한 아파트 냉장고에 시신을 보관해 온 혐의를 받고 있다.

이처럼 유령아동을 상대로 한 범죄가 한참 뒤에서나 발견되는 이유.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태어난 사실조차 확인되지 않는 출생신고 체계 때문이다. 신생아의 부모는 주민등록법상 출생 1개월 이내에 신고를 해야 하지만 이를 어길 경우 과태료 처분을 받을 뿐이다. 산부인과 등 의료기관은 행정 기관에 출생 사실을 통보하지 않는다. 이러한 시스템 아래 유령아동이 생성되는 것이다. 

실제로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도 출생신고 체계 구멍 아래 발생했다. A씨는 남편에게 낙태했다고 거짓말을 했고 남편은 이 말을 믿은 것으로 알려졌다. 출생신고 의무가 부모에게만 부여돼 있는 상황에서 출생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으니 사망 파악이 안 된 것이다. 문제는 이번 사건들과 유사하게 태어났지만 존재가 없는 '유령아동' 살해 및 유기, 학대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3월에는 생후 76일이 지난 아기를 제대로 돌보지 않아 영양결핍으로 숨지게 한 친모가 구속됐는데, 미혼모인 친모는 출산 뒤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 이에 앞서 2021년 1월에는 8살 딸을 살해한 혐의로 친모가 구속됐는데, 숨진 아동은 출생신고가 안 돼 있어서 지자체나 교육당국 등의 아동학대 예방체계에서 걸러지지 않았다.

이번 수원 사건 역시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이 어쩌다가 발각되었다. 감사원이 보건복지부 정기 감사 과정에서 '출산한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영아 사례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이 중 일부에 대해 아동의 무사 여부를 지자체에 확인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 문제는 감사원은 지난 2015년부터 작년까지 8년간 출산 후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영아는 2천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다른 영아 살해 유기 범죄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복지부는 이렇게 유령아동들이 행정상 '투명인간'으로 살면서 학대 예방 및 단속체계 '그물망'에 걸리지 않는 상황을 막기 위해 의료기관이 지자체에 출생 사실을 통보하는 '출생통보제'를 추진하고 있다. 출생통보제는 의료기관이 아동 출생정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전산정보시스템을 이용해 시·읍·면장에게 통보하도록 하는 제도다. 정부는 지난 4월 13일 윤석열 정부의 아동정책 추진방안을 발표하면서 이 제도의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의료계의 반대로 추진이 더딘 상황이다. 의료계는 행정부담과 시스템상 문제에 대한 책임 소재 등을 들며 반대하고 있다. 출생과 동시에 의료기관에서 자동으로 출생 통보를 하게 되면, 일부 임신부의 경우 병원 출산을 꺼려 병원 밖에서 출산을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의료계에서 나온다. 아울러 의료계에서는 출생통보에 대해 수가를 지불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 논의가 지지부진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한편, 이번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이 발생하자 정부·국회 모두 뒤늦게나마 논의를 가속하는 모습이다. 또 표본조사만으로도 사망 사례 등이 잇따라 확인되자, '유령아동' 2천여명을 대상으로 한 정부의 전수조사를 시작할 계획이다. 다만 현재로서는 복지부가 임시 신생아번호를 토대로 산모 인적사항을 수집해 출생신고 여부를 확인하거나 추적 조사할 근거가 없어 엄밀히는 전수조사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유령아동에 대한 살해 및 유기, 학대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 아동이 출생 등록될 권리는 유엔아동권리협약도 명시하고 있다. 이 협약 7조는 '아동은 태어난 즉시 출생 등록되어야 하며 출생할 때부터 이름을 갖고 국적을 취득하며 가능한 부모를 알고 부모에게 양육 받을 권리가 있다'고 적고 있다. 이 기본에 입각한 유령아동 보호제도가 국내에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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