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당 정치의 위기와 정치 혁신의 방향

제너럴 일렉트릭(GE)의 회장을 지낸 잭 웰치(John Frances Welch Jr.)는 “외부의 변화가 조직 내부의 변화보다 크다면 최후가 가까워진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업의 안주(安住)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고하는 진단이지만, 대한민국 정당들에게 절실하게 와 닿는 금언이다. ‘안철수 현상’이라는 외부의 변화야말로 우리나라 정당들이 스스로의 개혁에 실패했고, 이로 인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음을 말해주는 단적인 증거가 아닐 수 없다.

흔히 우리는 ‘현대 정치는 대의(代議) 정치이고, 대의 정치는 곧 정당 정치’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맞는 말이다. 아무리 국민의 의사가 소중하다고 해도 이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민의(民意)를 직접 반영할 수는 없다. 지식정보 시대를 맞아 대의 정치를 보완하는 기제와 기회들은 늘어나고 있지만, 이 또한 대의 정치의 틀을 벗어나 작동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국회가 ‘민의의 전당’이고,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표’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1948년 제헌(制憲) 국회와 더불어 대의 정치를 시작했지만, 민주화 이전 40년 동안은 대의 정치가 죽어 있었다. 참다운 의미의 대의 정치가 싹을 틔운 것은 1988년의 제13대 국회부터이다. 제13대 국회는 권위주의 시절 있었던 각종 악법들을 개정 혹은 폐지하고, 국정감사를 부활하는 등 민주적 기본 질서에 가깝게 다가가고 있었다. 이러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대의 정치는 지금 동맥경화증에 걸려 있다.

요컨대 우리나라의 대의 정치는 권위주의 시절의 허물을 벗기는 데는 성공했지만, 유권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수준으로는 발전하지 못했다. 대신에 당리당략에만 깊이 빠져 있다. 이른바 ‘주인과 대리인의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그래서 거의 해마다 날치기와 몸싸움이라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실로 ‘정치의 3C’가 대단히 부족한 대한민국 국회이다. 즉, 상식(Common Sense), 소통(Communication), 타협(Compromise)이 그것이다.

대의 정치의 위기는 바꿔 말해 정당 정치의 위기이다. 물론, 대의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그렇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정당이 정당답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당은 ‘정권 창출을 위해 이념 혹은 신념을 함께 하는 사람들의 결사체’라 정의될 수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당들이 이런 사전(辭典)의 정의에 제대로 부합한다고 생각하는가? 여기에 동의하는 국민은 별로 많지 않다.

정당이 ‘이념이나 신념의 결사체’라는 정의는 정당이 아래로부터 만들어진다는 의미를 띠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당들은 권력이나 몇몇 지도자들이 밀실에 모여 급조한 사당(私黨)에 다름 아니다. 또 미국이나 서유럽과 같은 ‘100년 정당’은 고사하고 수시로 만들어졌다 없어지곤 하는 전형적인 ‘포말(泡沫) 정당’이다. 그래서 정당 이적을, 단골 가게를 바꾸는 일보다 더 쉽게 저지른다. 신장개업이나 당명 개정이란 편법을 쓰는 일도 부지기수이다.

조직의 실체가 자주 바뀌고, 당원들의 정체성 또한 쉽게 흔들리는 정당을 ‘이념이나 신념의 결사체’라고 할 수는 없다. 한 가지 정당의 원리에 들어맞는 것은 권력 취득이라는 당면 목표뿐이다. 정당들이 권력욕에만 혈안이 되다 보니 선거 풍토가 어지러워지고 국회가 정상적인 기능을 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남다른 애국심과 열정으로 국회에 입성한 국회의원들도 당론이라는 이름 아래 잘못된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나라 정당들은 ‘참여형 정당’이 아니라 ‘동원형 정당’이 될 수밖에 없다. 당원이면 당비를 내고, 당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며, 당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당의 당원들에게는 그런 권리와 의무가 적은 편이다. 자발적으로 당비를 내는 당원들은 소수이다. 이 때문에 국가가 정당에 국고보조금을 지급하는 희한한 현상이 유지되고 있다. 또 능동적으로 당의 활동에 참여하는 당원들은 극소수이다.

어떤 사람들은 각급 공직선거의 정당 후보를 공천심사위원회가 아닌 당원 경선으로 선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주의 원리에는 맞는 말이지만, 우리나라 정당 현실에서 참다운 의미의 경선이 가능하겠는가? 국회의원이나 당원협의회 위원장들이 사실상 정하는 대의원들이 공정하게 후보를 선출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기’나 다름없다. 거기다 ‘돈 경선’의 위험은 상존한다.

그래서 이른바 ‘국민 경선제’가 도입된 것이다. 당원에게만 맡길 수가 없으니까 일반 국민에게도 참여 기회를 개방하여 당심(黨心)이 아닌 민심을 제대로 반영해 보자는 취지이다. 하지만 특정 정당의 후보를 뽑는 데 당원 아닌 일반 국민이 참여한다는 것은 원리적으로는 말이 안 된다. 더욱이 언필칭 ‘국민 경선’이라고 하지만 후보 측에서 동원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무늬만의 국민 경선이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정당 정치의 위기는 우리나라 정당들이 정책 정당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데서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정당들도 정책을 생산한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나아지고 있지만,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정책 정당을 활성화하기 위해 현행 정당법은 국가로부터 국고보조금을 받는 정당은 정책연구소를 설치·운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정치자금법은 국고보조금의 30퍼센트 이상을 정책연구소에 배분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주요 정당들은 모두 정책연구소를 설치해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자금법의 관련 규정을 지키는 정당은 사실상 전무하다. 정책연구소에 등록되어 있어도 실제로는 다른 조직에 속해 있거나 정책 아닌 여타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당직자들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이런 현상은 정당들이 정책 활동보다는 조직 확대나 선거운동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래서 정당들이 내놓는 정책 결과물은 빈곤하기 짝이 없다.

이처럼 우리 정당들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곧 대의 정치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정당 정치와 대의 정치의 위기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정치 선진국들도 모두 겪고 있다. 정보화로 인한 신뢰성의 위기, 다원화에 따른 이념적 정체성의 동요, 관료주의의 강화 등 여러 요인이 겹쳐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정당 정치와 대의 정치도 이런 위기 국면에 놓여 있지만, 이보다는 정당다운 정당의 부재가 더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맞이하고 있다. 안철수 후보의 급부상과 지속적인 선전(善戰)은 대한민국 정당 정치의 위기를 반영하고 있지만, 과연 안 후보의 출마가 작금의 대한민국 정당 정치를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만일 안 후보가 당선된다면 그 자체로 변화의 계기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기존의 낡은 체제가 가진 기득권의 힘이 막강해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게다가 안철수 후보에게는 함께 하는 정치 세력이 없다. 설령 다른 정당과의 연합으로 정권을 구성하더라도 그 불안정성은 해소되기 어렵다. 한 가지 방법은 대선 후 그 정당과 합치는 것인데,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안 후보는 무소속 대통령이라도 등거리에서 여-야 정당과의 대화를 통해 국정을 잘 운영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현실은 안 후보의 뜻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반대로 안철수 후보가 도중하차하거나 당선에 실패하는 경우에는 기존의 낡은 정당 체제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안철수 후보의 지지 세력은 소멸할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중 패자는 당분간 방향타 잃은 표류선 꼴이 아닐까. 이 또한 건설적 대안을 여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환골탈태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승리한 쪽은 기고만장하여 국정 안정이라는 미명 아래 현상 유지를 택할 것이다.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는 “어제를 버리지 않으면 내일을 건설할 수 없다.”고 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치가 선진화되어야 하는데, 그 요체는 정당의 선진화이다. 지금의 노후한 정당들로는 내일을 기약하기 어렵다. 따라서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는 시대 흐름에 맞는 새로운 정당 체제의 구축에 정치 혁신의 중점을 두어야 한다. 정당 정치의 위기에는 주인인 유권자에게도 책임이 있다. 때문에 우리 유권자들도 정당 정치를 바로 세우는 데 동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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