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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이호기자] 연개소문(?~665?)은 시대에 따라서 역사적 평가가 극적으로 갈리는 인물이다. 연개소문은 유교사상의 지배를 받는 조선시대 까지는 왕을 죽이고 고구려를 멸망으로 이끈 인물로 묘사되었으나, 민족주의 역사가들에게는 위대한 혁명가로 평가 되었다.

연개소문의 아버지는 고구려 최고의 관직인 대대로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었다. 연개소문은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연개소문은 15세에 그 직위를 계승하게 되었다. 그러나 수나라와의 연이은 전쟁으로 인해 국력이 쇠약해 지는 것을 걱정, 신생국가인 당과의 화친을 정책으로 삼고 있던 영류왕과 귀족들은 당에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던 연개소문이 그 자리에 오르는 것을 매우 걱정했다.

당나라 초대 황제인 이연은 아직 나라를 안정시키지 못한 상황이여서 강력한 군사 국가였던 고구려와 화친하는 것을 정책으로 하여 양국은 평화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고구려를 눈엣가시로 보고 있는 이세민이 당의 두 번째 황제로 등극하자 전국은 바뀌게 되었다. 이연의 둘째아들이었던 당태종(이세민)은 형과 동생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을 만큼 야심이 많았고 주변의 소국들을 정복하기 시작, 628년에 중국 대륙 전체를 통일 하였다.

 

국력이 강해진 당나라는 고구려를 위협하기 시작하여 영류왕은 이에 위협을 느끼고 당나라 침입을 대비해 천리장성을 쌓기 시작했다. 천리장성은 엄청난 대공사여서 기간도 총 16년이나 걸렸다. 그리고 바로 천리장성의 축조의 책임자가 연개소문이었다.

642년 연개소문은 고구려의 수도 장안성 남쪽에서 대대적인 군대 사열식을 개최하여 술과 음식을 화려하게 차리고 많은 귀족을 초대했다. 화려한 식이 거행되던 중 연개소문의 신호를 받은 부하들은 순식간에 100여 명의 귀족을 참살하였고 그 길로 궁으로 달려가 영류왕을 시해하고는 시신을 여러 토막으로 잘라 시궁창에 던져버렸다.

정권을 장악한 연개소문은 영류왕의 조카를 새로운 왕으로 삼아 보장왕이라 하고, 자신은 인사권과 군사권을 총괄하는 막리지에 올라 바야흐로 고구려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연개소문이 권력을 장악한 직후, 신라의 김춘추가 찾아와 백제의 공격을 받고 있는 신라에 군사지원을 요청했지만 한강유역을 달라는 보장왕의 요구로 사실상 거절을 당했다. 이에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에 고립이 된 상황이 되어 당나라에 도움을 요청했다.

한편, 당태종이 중국의 소국들을 모두 정복하고 있는 상황에서 고구려는 그가 넘어야 할 마지막 산이었다. 그런 그에게 연개소문의 반역 사건은 좋은 빌미가 되어 주었고 신라역시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당태종은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신라에 대한 공격을 중지할 것을 명령하였고 그렇지 않을 경우 고구려를 공격하겠다는 전언을 남겼다.

하지만 당에 대한 강경파였던 연개소문에게 이런 협박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644년 당태종은 이에 격분하여 고구려 정벌을 선포했다.

이리 하여 고·당 전쟁이 시작되었고 요하 강을 건넌 당나라 군사들은 개모성을 점령하고 요동성을 함락시켰다. 그러나 고구려군은 거센 반격을 통해 신성, 건안성 등을 지켜내며 당나라 군사의 밝을 묶을 수 있었고 장기전으로 접어들면서 당나라 군사들이 고립되고 굶주려 차츰 승기를 잡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5개월에 걸친 안시성 전투에서 승리를 거둬 당나라를 물리치게 되었다.

이 전쟁에서 패배한 당태종은 이후 직접 군대를 이끌지 못한 채 고구려를 공격하라는 명령만 내리다가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649년 병이 악화되어 죽었다. 당태종은 고구려에 패배하여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후 660년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은 백제를 멸망시키고 고구려를 고립시켰다. 그리고 고구려까지 멸망시키려 했으나 연개소문이 직접 전투에 나선 고구려는 당군 전원을 몰살시키는 대승을 거두어 이후 665년 연개소문이 죽을 때까지 당나라는 더는 고구려를 공격하지 못했다.

연개소문은 뛰어난 군사지도자로서 고당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강력한 리더십으로 동북아시아를 지배하던 강한 고구려를 만들었다. 하지만 당시의 국제정세를 정확하게 읽어내지 못해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당과 신라에 의해 고구려를 멸망시킬 계기를 만들었고, 후계자를 제대로 기르지 못해 자식들 간의 분쟁이 결국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은 비난을 받고 있다.

고구려가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굳게 믿어 당에 사대를 하려 했던 영류왕을 죽인 연개소문. 무엇보다 고구려의 강건함을 굳게 믿고 있었던 연개소문은 왕을 죽인 역적일까, 고구려를 최고의 국가로 만든 영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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