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심재민/디자인 최지민]

▶ 요한 바오로 2세 [본명 : 카롤 보이티야(Karol Wojtyla), 별칭 : 안드레아 예비엔]
▶ 출생-사망 / 1920.5.18 ~ 2005.4.2
▶ 국적 / 폴란드 바도비체
▶ 활동분야 / 종교 [제264대 교황, 재위기간 : 1978년∼2005년]
▶ 주요저서 / 우주의 지적인 생명체, 코스모스, 혜성

456년 만에 첫 비(非) 이탈리아 출신의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 그는 교회와 신앙은 물론 세상의 다양한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교황으로서 여러 의미 있는 활약을 하였다.

평범한 연극학도 카롤 보이티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본명 카롤 보이티야는 1920년 5월 18일 폴란드 바도비체에서 군인 출신 양복점 주인과 교사 부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938년 아젤로니아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해 연극 활동을 하며 ‘안드레아 예비엔’이라는 이름으로 시와 희곡 등을 직접 저서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카롤 보이티야는 학업을 중단하고 연극배우생활에 전념했다.

전쟁의 참상을 보며 성직자의 길로 들어서

전쟁의 참상을 직간접적으로 목격한 카롤 보이티야는 마음속에 성직의 뜻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리곤 이내 성직자로서의 길에 들어서기로 마음을 먹은 카롤 보이티야는 1942년 나치하에서 비밀리에 운영되던 크라코프신학교를 졸업했고, 1946년 사제가 된 이후 1953년 크라코프(Krakau) 대학의 교수로 활동하였으며, 1964년 크라코프의 대주교가 되어 1967년에는 추기경으로 임명되었다.

455년 만의 비(非) 이탈리아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1978년 요한 바오로 1세가 등위 34일 만에 서거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후 후계 교황으로 카롤 보이티야가 선출되었다. 이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다. 이탈리아인이 아닌 교황은 사상 처음 455년 만의 일이기 때문이었다. 카롤 보이티야는 사명감을 느끼고 교회 생활을 심화시키고 평화, 인권, 자유 등 이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를 극복하는 데 교회가 협력한다는 계획을 교황명에 담아 요한 바오로 2세로 선택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포부와 달리 비 이탈리아 출신 등 여러 부분에서 반대 세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1981년 5월 교황청 앞뜰에서 교인들을 접견 중 한 터키인의 저격으로 부상을 입었으나, 다행히 이후 빠르게 건강을 회복했고 예전처럼 정상적인 업무 활동에 임할 수 있었다.

교회는 물론 정의, 가정, 화해, 평화 등 다양한 고민 이어가

요한 바오로 2세는 신앙과 교회 문제 이외에 인류가 안고 살아가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고민했고, 기도 했다. 이를 나타내듯 그가 발표한 교서들은 주제가 정말 다양했다. 사회 정의, 가정생활, 현대의 교리 교육, 교회의 사명과 관련된 화해와 참회 등이 대표적으로 이러한 고민들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가치를 잘 말해 주고 있다. 특히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으로서 현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와 직면하기를 꺼려하지 않았고, 이를 통해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발판을 만들기를 원했다. 때문에 수많은 호소와 설교를 통해 세계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1986년에는 아시시에서 평화를 위한 세계 기도 모임을 개최하였다. 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한국과도 연이 깊다. 1984년 한국천주교 200주년 기념식 때 내한한 바 있고, 1989년 세계성체대회 당시에도 한국을 방문해 여러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이와 같은 신앙에 대한 진심과 신심을 통해 3천년대 새 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2천년대의 교회가 준비해야 할 점들을 강조하기도 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특히 ‘3천년을 맞는 칙서(勅書)’를 통해 갈등을 빚어온 구교와 신교의 일치운동에 있어 화해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업적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렇게 묵묵히 신앙인이자 교황으로서의 신념을 고수하며 실천을 통해 세상에 귀감이 되어 온 요한 바오로 2세는 2005년 4월 2일 선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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