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창] 그 누구도 꺾지 못한 독립의지, 3.1 만세운동의 상징 ‘유관순’
[지식의 창] 그 누구도 꺾지 못한 독립의지, 3.1 만세운동의 상징 ‘유관순’
  • 보도본부 | 한성현 PD
  • 승인 2019.02.2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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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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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1919년 3월 1일, 기미년 독립 만세 운동 100주년이 되는 특별한 해입니다. 국가보훈처는 올해 1월의 독립운동가로 이 사람을 선정하여 국민들에게 알리기도 했죠. 아우내 장터에서 목이 터져라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고 일본 헌병들에게 체포된 뒤에도 모진 고문을 견뎌내면서 옥중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도 한 그녀. 바로 유관순 열사입니다.

[출처_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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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MENT▶
유관순이 이화학당 고등과 1학년에 진급한 1919년. 3.1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이화학당의 교장 선생님은 학생들의 안전을 염려해 참가를 말렸지만, 학생들은 담을 넘어가면서까지 운동에 참가했죠. 이 여파로 전 학교에 휴교령이 떨어지자 유관순은 이화학당을 함께 다니던 사촌 언니와 함께, 고향인 천안으로 내려가 만세 운동을 주도합니다. 이것이 잘 알려진 3.1 운동 중 아우내 만세운동입니다.

[출처_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출처_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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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밤새 태극기를 만들고 만반의 준비를 한 뒤 날이 밝자 동지들과 함께 장터에 모인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줍니다. 그리고 모여든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애국심을 고조시키기 위해 열변을 토해내죠. 이후 아우내 장터에 모인 3,000여 명의 사람들은 유관순과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칩니다.

일본 헌병들은 사람들을 향해 마구 총을 쏘아댔으며 이때 유관순의 부모님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유관순은 주동자로 몰려 체포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고문을 받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시위 주동자라고 말하며... 죄 없는 다른 사람들은 석방하라고 헌병들한테 호통 치기도 하죠. 이뿐 아니라 일제의 재판을 당당하게 거부하고 민족적 기개를 잃지 않았고, 결국 3년 형을 선고 받고 서울 서대문 형무소로 옮겨집니다.

[출처_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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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온갖 탄압과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옥중 만세운동을 전개하죠. 감옥에서도 수감자들의 항일 독립 의지를 고취하며 불굴의 독립 의지를 표출합니다. 이로 인해 지하 감방에 감금되어 야만적이고 무자비한 고문을 당하게 되는데요.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장독으로 인해 1920년 9월 28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18살의 꽃다운 나이로 순국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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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정부에서는 1962년 유관순에게 건국 훈장 독립장을 추서하고 1974년에는 서울 이화여자고등학교에 유관순 기념관이 준공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91년 고향인 천안시에 생가가 복원되었으며 1996년에는 이화여자고등학교 명예 졸업장이 추서되기도 했습니다.

[출처_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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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남긴 유언은 우리 국민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MC MENT▶
꽃다운 청춘과 목숨을 바쳐 독립을 이룬 노력. 우리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유관순. 그녀가 보여준 애국심은 이후에도 우리 국민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입니다.

제작진 소개
책임프로듀서 : 한성현 / 구성 : 박진아 / CG : 이정선 /  연출 : 홍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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