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심재민 / 디자인 이연선]

▶ 도나시앵 알퐁스 프랑수아 드 사드(Donatien Alphonse François de Sade)
▶ 출생-사망 / 1740.6.2. ~ 1814.12.2.
▶ 국적 / 프랑스
▶ 활동분야 / 작가
▶ 주요저서 / 쥐스틴 또는 미덕의 불운 (1791), 소돔 120일 (미완성)

- ‘사디즘’의 어원이 된 사상 악명 높은 소설가
사드 후작으로 불리는 ‘도나시앵 알퐁스 프랑수아 드 사드’는 역사상 변태 성욕자로 거론되는 논쟁거리가 많은 인물로, 현재의 사상으로도 이해되지 않은 다수의 사상을 펼치고 작품 활동을 해 사디즘을 유래시켰다. 그가 남긴 대표작 <소돔의 120일>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추악함’ ‘타락’ ‘변태 성욕’ 을 묘사한 책으로 현재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사디즘 : 성적 대상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성적인 쾌감을 얻는 이상 성행위)

- 10대 때부터 드러나는 변태성욕
프랑스 파리에서 백작의 자손으로 태어나 후작이라는 지위까지 얻었던 사드. 명성 자자한 가문에 총애를 받던 사드는 기병대에 입대해 7년간 전쟁 상황을 경험하고 파리로 돌아온 10대 후반 시절부터 놀음꾼, 변태 성욕가로 악명을 높였다. 그러다 23살 되던 해 르네 펠라지 드 몽트뢰이라는 여성과 결혼을 했는데 당시 그의 장인은 파리의 조세재판소에서 소장으로 근무했고 장모 역시 정치적 영향력이 있어 사드의 앞날에 다양한 영향을 주었다.

- 사디즘 실험 등 걷잡을 수 없는 방탕
백작의 자손, 영향력 있는 집안의 사위. 남부러울 것 없던 사드는 1967년 부친 사망 이후 가문의 재산을 흥청망청 탕진했다. 가정이 있음에도 고삐 풀린 듯 유흥 생활을 이어가던 사드는 시종일관 매춘부와 어울렸으며 심지어 채찍질을 통해 쾌락을 얻기 위한 일명 ‘사디즘’ 실험에 전념했다. 현재에도 충격적인 그의 행보에 당시 파리의 수사당국에서도 사드를 예의 주시해 여러 차례 걸쳐 사드는 체포되었고 수배되었지만, 귀족 가문에 처가의 영향력으로 빈번히 국왕의 사면을 얻었다.

- 변태적 행동의 극을 달하다 만난, 인생의 절벽
그의 ‘사디즘’으로 대변되는 변태성욕은 그칠지 몰랐다. 매춘부를 상대로 한 사드의 행동은 점차 그 정도는 심해져 그에게 심각한 위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 피해자들이 증가했다. 몸에 상처를 내고 뜨거운 밀랍을 붓는 등 변태적 행동의 극을 달리다 32살이 되던 해에는 매춘부에 최음제를 먹여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게 만들었다. 그렇게 매춘부 독살 및 남색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사드는 4년여 도피 끝에 37살에 체포돼 5년 뒤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풀려났다. 또한 처와 처가 역시 더 이상 사드의 행동을 용납하지 않아 이혼해야 했고, 그의 생존마저 위협하는 상대가 되어 있었다.

- 작품으로도 인정받을 수 없는 사상
출소 이후 모든 것을 잃은 사드. 평소 사디즘과 자신의 사상을 담은 작품을 써왔던 그는 평소 관심 있었던 연극계를 기웃거리며 작품을 무대에 올리려 했으나 관심은커녕 비난을 받기 일쑤였다. 또 재산을 모두 탕진한 귀족 신분 사드는 혁명 세력에 잘 보이려 했지만 1793년 반혁명분자로 체포되는 등 상황이 나락까지 떨어지게 되었다. 이후 사드는 생계를 위해 작품을 집필하는 데에 주력했고 다양한 작품을 자신의 이름으로 또 익명으로 펴냈다.

- 가문마저도 버린 ‘사드’, 정신병원에서 마감한 생
사드의 상황은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가진 것이 없어 극빈자 구호소에서 생활하기도 했으며 그의 작품은 연이어 음란물로 취급받아 ‘음란물 유포죄’로 체포 수감되기도 했다. 심지어 ‘사드’라는 이름을 수치로 여겼던 자신의 자녀들로 인해 정신병원에 가둬지기도 했다. 그렇게 사드는 샤랑통 정신병원에서 환자들을 데리고 아마추어 극단을 조직해서 공연을 가졌으며, 이는 훗날 페터 바이스의 희곡 (마라와 사드, 1963)의 소재가 되어 유명해졌다.

‘무덤의 흔적조차 없애 달라’, 1814년 12월 차가운 샤랑통 정신병원에서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에 사드가 남긴 유언이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뛰어난 출신, 반대로 많은 사람들이 손가락질 한 사드의 인생. 그가 추구하려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그의 작품, 특히 <소돔의 120일>은 여전히 세상에서 논란거리 가득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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