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 / 디자인 이정선] 법률을 다룬 영화, 또는 드라마는 사건에 대한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의 흥미로움과 검사와 변호사의 논리력 싸움이 극의 긴장감을 더해주는 요소이다. 

그리고 이 긴장감을 단숨에 해소하는 아이템이 있다. 바로 법봉이다. 재판관은 검사와 변호사의 공격과 방어를 면밀히 지켜본 후 법봉을 침으로써 공방을 마무리 시킨다. 그리고 판결을 내리면서 재판이 끝났다는 의미로 또 땅땅땅~ 하고 법봉을 친다. 

때문에 법원을 가면 법봉을 치는 소리가 절간의 목탁을 두드리는 소리처럼 자주 들릴 법 한데 실제로는 이를 들을 수 없다. 실제 법원에는 법봉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법원의 상징인줄 알았던 법봉이 없는 것일까? 

법봉은 사법부의 권위를 상징하며 마치 망치로 못을 박듯 해당 사건에 대해 변경될 수 없는 확실하고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판사는 법정에서 다른 누구보다 가장 높은 위치에서 검사와 변호사, 청중들을 내려 보고 있다. 판사의 입장 시에는 누구나 판사를 존중한다는 의미로 기립을 해야 하며, 법정 안에서 판사는 해당 사건에 대한 전능한 권한을 갖고 있기에 마치 신과 같은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판사는 법원에 서 있는 사람의 나머지 인생을 결정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 그 자체로 굉장히 권위적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권위주의가 지나치면 국민은 사법 제도에게서 엄청난 괴리감과 불안감, 압박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사법 제도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만큼 국민에게 지나친 위압감을 주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사법부는 오랜 시간 동안 많은 변혁을 일으켜 왔다. 영국의 재판관에서 쓰는 위그 대신 착용했던 법모를 없애기도 하고 넥타이를 없애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법봉이었다. 사법부는 권위주의에서 벗어나자는 취지로 1960년대 이후 법봉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우리나라 법원에서는 법봉이 사라졌다. 

아니, 심지어 우리나라 법원 규정에는 재판을 마무리 한 후 법봉을 두드려야 한다는 규정 자체도 없었다. 있었던 것을 폐지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법봉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법봉이 존재하는 것일까? 그것은 앞서 말했듯이 법봉이 극의 클라이막스를 알리는 소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재판관이 판결을 내리기 전에 또는 법원에서 소란스러울 때 법봉을 치면서 명령을 내리거나 판결을 내리는 모습은 재판관의 법원에서의 절대적인 권력을 상징한다. 또한 법봉을 침으로써 사건의 전환이나 환기를 노리는 장치로도 쓰일 수 있다.

사법 제도는 누군가를 처벌하기 때문에 당연히 위압적이고 권위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법봉을 없앤 것은, 과거에도 그런 위압감을 조금이나마 줄여주려 했던 사법부의 노력 중 하나였을 것이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