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김태웅 / 디자인 최지민] 지난 7월 19일 대학가에 충격적인 사실이 보도됐다. 전 세계 관광지에서 벌어지는 엉터리 국제학술대회 ‘와셋(WASET)’의 존재가 세상에 밝혀졌고, 여기에 서울대를 비롯한 국내 유수의 대학과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에 정부는 실태조사에 나섰다.

와셋(WASET)은 World Academy of Science, Engineering and Technology의 줄임말로 세계과학공학기술학회를 뜻한다. 이 학회는 논문 제출자의 학위나 연구 실적 등을 인위적으로 높이기 위해 돈을 받고 적절한 심사 없이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며 가짜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와셋은 터키의 아르디 가족 일파가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들은 전 세계의 학자들에게 무분별하게 이메일을 보내 논문 투고를 권유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리고는 1인당 500유로 우리 돈으로 약 65만 원의 국제 학술대회 등록비를 제시한다. 논문 투고자에게 학계에서 통용되는 검토, 편집, 출판 서비스를 제공하지도 않으면서 높은 출판 비용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개최하는 학술대회는 어떻게 열릴까? 우선 학술 발표 장소는 국제적 관광지로 지정된다. 참가 인원의 관심을 끌기 위한 작업이다. 그리고는 별도의 개막선언도 주최 측 인사말도 없이 발표를 시작한다. 또한 기존에 공지했던 1박 2일 발표 프로그램은 시간을 조정하여 불과 몇 시간 만에 일찍 끝낸다.

발표하는 이들도 가짜다. 미국 MIT 대학에서 만든 자동논문생성기 SCIgen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순식간에 논문을 만들어 내 와셋 학술지에 투고한 후, 실제로 학술대회에 참석하여 가짜 논문을 발표한다. 이렇게 운영하는 이유는 학술의 연구와 발전에는 관심이 없고, 돈벌이에 주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운영 방식으로 해적 학술시장은 해마다 성장했다. 핀란드의 한 연구진이 와셋을 연구한 결과, 2010년 약 1,800개의 학술지를 통해 5만 3천여 건의 학술논문을 출판했으며 2014년에는 8천여 개의 학술지, 출판된 학술논문 수는 약 42만 건까지 늘어났다.

지난 2007년부터 와셋에 이름을 올린 한국인 학자는 모두 4,227명, 기관은 272개다. 그중 가장 많은 논문을 게재한 곳은 대덕 특구 연구원 75명이며 국립대 중에서는 카이스트대가 44건, 한밭대 18건, 공주대 15건, 충남대 14건 순이다. 이외에도 10여 개의 사립대학도 연루되어 있어 수많은 국내 대학교와 교수들이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해적학술지가 성행하고 국내 교수들이 피해를 본 이유는 무엇일까? 정보화 기술로 무장한 사기꾼들과 돈을 바라는 학자들의 상호 작용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자동논문생성기 기술과 메일링 기술이 있다. 여기에 국내 교수들은 국제 학술대회는 국가 연구비를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이 신규 연구비를 신청하고 평가를 받을 때는 이미 발표한 논문의 수와 질을 객관적인 평가 지표로 삼기 때문에 와셋과 같은 국제 학회에서는 표적으로 삼기 딱이다.

결국 문제는 돈으로 귀결된다. 사회에서 나름의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더 높은 위치에 대한 욕망, 마치 영화 ‘상류사회’의 한 장면과 같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지만, 현재 지키고 있는 자리 또한 무한하지 않다. 직업에 대한 자긍심과 윤리 그리고 양심을 지키는 모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