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 정지원] 지난 32년간 수없이 많은 No.1 판매 기록을 세우며 전 세계 65회 이상의 수상 기록을 세운 미국의 세계적인 화장품 브랜드 ‘에스티로더’. 자신의 이름이 곧 브랜드의 이름이 된 ‘에스티로더’. 국내에서도 파운데이션 등 많은 화장품이 여성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에스티로더는 어떻게 세계적인 브랜드가 될 수 있었을까?

“실수로 쏟은 향수에 쇄도하는 문의”

[출처_ 에스티로더 공식 홈페이지]

어려서부터 화장품에 관심이 많았던 에스티로더는 피부과 의사였던 삼촌이 만든 미용크림을 미용실 등에 판매하러 다니면서 화장품과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미용실에 방문한 손님들 얼굴에 직접 자신이 만든 화장품을 발라주는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품질이 좋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사업이 번창하기 시작했다. 이후 1946년, 에스티로더는 남편 조셉 로더와 뉴욕 맨해튼에 ‘에스티로더’를 설립하게 된다. 

[출처_ 에스티로더 공식 홈페이지]

에스티로더 초기에는 크림, 크림 팩, 클렌징 오일, 스킨로션 단 4가지 제품을 판매하였다. 그리고 1953년에 이르러 ‘유스 듀’라는 바스 오일(Bath Oil) 형태의 향수를 개발하였는데 이 제품은 목욕 후 바로 바르는 이중 효과의 특징을 가지고 있어 미국 여성들에게 큰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출처_ 에스티로더 공식 홈페이지]

그리고 어느날 에스티로더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을 사건이 발생했다. 에스티로더는 향수의 나라인 프랑스 백화점에 유스 듀를 입점 시키기 위하여 관계자들과 미팅을 하다가 실수로 유스 듀를 바닥에 다 쏟게 되었다. 미팅은 그렇게 실패한 듯 했지만 그 향이 하루 종일 남아 이 향을 맡은 남성들의 향수 문의가 쇄도하였고, 결국 프랑스에 진출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업계의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이후 이 제품의 향은 다른 제품에도 접목되는 등 회사의 성장 기반이 되었다.

“로더 룩에서 시작된 열풍”

[출처_ 에스티로더 공식 홈페이지]

에스티로더가 한창 사업 규모를 확장시켜가고 있을 무렵인 1950년대와 1960년대 미국에서는 럭셔리하고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이미지가 인기를 끌었다. 이에 에스티로더는 ‘로더 룩(Lauder Look)’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에스티로더 제품을 사용하면 자신처럼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가진 아름다운 여성이 될 수 있음을 어필하였다.

이런 에스티로더의 전략은 맞아떨어져 ‘에스티로더’는 아름다운 여성의 상징으로 부각되었고 소비자들로 하여금 이 브랜드의 제품을 사용해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구가 생기도록 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 외에도 여러 마케팅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훗날 수백 만 명의 여성들에게 에스티로더의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 곧 아름다움의 비결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만들었다.

“하루라도 판매를 하지 않은 날은 없다” 

[출처_ 에스티로더 공식 홈페이지]

어느 날, 에스티로더는 홍보 예산이 부족하자 기존과 다르게 상품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작은 사은품을 무료로 나누어주면서 홍보에 박차를 가했다.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화장품 브랜드들이 이러한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이미 에스티로더에서 고안한 홍보 전략이었던 것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라인을 개발하면서도 여성 직원들의 교육을 위해 미국 전역을 직접 순회하며 연구하기도 했던 에스티로더는 마케팅뿐만 아니라 서비스적인 부분까지도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다. 그 결과, 에스티로더는 타임지에서 선정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천재’에 이름을 올리며 CEO로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출처_ 에스티로더 페이스북]

내가 일한 날 중에 하루라도 판매를 하지 않은 날은 없습니다. 무엇인가를 믿는다면 저는 그것을 판매합니다.“ 에스티로더가 자신의 사업 전략에 대해 밝힌 말이다. 뉴욕 퀸즈의 작은 지역에서 성장했지만 우아함과 여성스러움의 상징이 된 ‘에스티로더’. 배경과 상관없이 변모한 에스티로더가 앞으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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