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심재민 기자/디자인 이연선]

▶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 출생-사망 / 1395 추정 ~ 1441.7.9
▶ 국적 / 네덜란드
▶ 활동분야 / 예술
▶ 주요작품 / <무덤가의 세 마리아> <젊은 남자의 초상> <겐트 제단화>, <아르놀피니의 결혼>

네덜란드 출신으로 유럽 북부 르네상스 미술을 이끈 화가. 특히 질감까지도 세밀하게 묘사하는 리얼리즘을 기본으로 하였으며 최초로 유화를 고안해 내기도 했다.

- 이탈리아와 구별되는 사실주의 미술 선구자

15세기 전후기에는 예술 분야를 이끌어 가는 서양을 중심으로 비현실적 양식이 두드러지는 고딕 양식이 추세였다. 하지만 이탈리아와 네덜란드 등 북유럽 지역에서는 극 사실주의로의 변화 물결이 일기 시작했는데, 그 1세대가 바로 얀 반 에이크이다. 그의 시작은 출생이 불분명할 정도로 미약했다. 하지만 궁정에서 화가로 일 하며 점차 예술 분야에서 명성을 떨쳤으며, 15세기 초 극 사실주의 플랑드르 미술을 선도하여 ‘궁정 귀족’과 ‘부르주아’ 계층의 후원을 받게 되었다.

- 물감에 기름을 섞는 유화 기법 고안

얀 반 에이크는 유화를 발명한 예술가로 유명하다. 당시 화가들은 광물과 식물 등 자연으로부터 원료를 얻어 물감을 만들어 사용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화가들은 이 과정에서 달걀을 섞어 사용하며 특유의 묵직한 질감을 조절했다. 하지만 한 가지 단점이 있었으니, 달걀을 섞은 물감은 공기 중에 노출되면 상당히 빠른 시간 안에 말라 작업에 애를 먹게 되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는 것이었다. 이에 얀 반 에이크는 달걀이 아닌 기름을 섞어 사용하는 묘수를 떠올리게 되었는데 이러한 기법이 새로운 그림의 분위기를 만들고 잘 굳지 않는 다는 장점이 알려지며 널리 퍼지게 되었고 현재까지 유화 기법으로 계승되고 있다.

- 최초, 최초, 최초...현재 예술 흐름의 초석이 되다

얀 반 에이크는 귀족들의 뜨거운 호응과 지지를 이끌어 내며 1425년 이후 본격적인 궁정화가로서 활동을 이어나갔다. 뿐만 아니라 예술계 사절단으로 네덜란드를 대표해 국제 활동도 활발히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얀 반 에이크의 예술 스타일은 많은 주목을 받고 전파력도 커지게 되었는데, 유화 화법 외에도 눈에 보이는 자연과 현실 심지어 옷의 질감까지도 작품에 표현하는 극사실주의,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담은 종교화, 초상화 등의 선구자로 기억되고 있다. 또한 얀 반 에이크는 대부분의 작품에 서명을 한 최초의 플랑드르 미술가 중 한 명으로 이 역시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다.

뛰어난 예술적 감각으로 유화 기법은 물론 극 사실주의 세계를 선도한 예술가 얀 반 에이크. 그의 본능적인 예술혼이 현재까지 계승되고 있는 것은 물론, 많은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에 서명을 담는 것 또한 얀 반 에이크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그의 앞선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얀 반 에이크의 작품은 후세에 단순한 그림이 아닌 “세계의 영원한 기록”이라 불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본능적인 예술혼을 바탕으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선명한 색채로 남아 있는 그의 생애가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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