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 지난 2008년 2월 10일, 우리는 믿기지 못할 광경을 목격했다. 대한민국의 국보 1호 숭례문이 어이없게 불에 활활 타고 있는 모습을 말이다. 임진왜란에도, 병자호란에도 버텼던 숭례문은 토지보상에 불만을 품었던 한 노인의 방화에 의해 2층 부분이 거의 전소되었다. 

이처럼 완전히 불타버린 숭례문은 엄청난 노력과 비용이 든 끝에 다행히 우리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오랜 역사를 간직해 온 대한민국의 얼을 간직한 국보의 화재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흥인지문(동대문)시선뉴스DB

그런데 그 충격이 또 다시 반복될 뻔했다. 9일 새벽 1시 49분쯤 A(43) 씨는 보물 1호인 서울 종로구 흥인지문을 몰래 침입하여 2층 누각에서 미리 준비한 종이박스에 불을 붙였다. 

이를 목격한 시민은 곧장 112에 신고를 하였고 이를 접수한 경찰은 출동과 동시에 흥인지문 관리사무소에 연락하였다. 이에 관리사무소 직원 2명이 현장에서 A씨가 박스에 불을 붙이는 것을 발견하여 소화기로 불을 끄면서 A 씨를 제압하였고 이어 출동한 경찰은 A 씨를 체포하는데 성공하였다. 

불은 다행히도 재빠른 관리직원들의 소화 작업으로 인해 담장 내부 벽면이 일부 그을리는 정도에 그쳤고 인명피해도 없었다. 

경찰 조사결과 A 씨는 교통사고 보험금을 제대로 받지 못해 홧김에 불을 붙였다고 진술하였으나 A씨가 과거 정신과 치료를 받은 사실과 구체적인 동기에 대해 횡설수설하고 있어 정확한 동기는 계속 조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우리에게 친숙하게 동대문으로 불리는 흥인지문까지 화재가 났다면 우리나라는 국보와 보물 1호 모두가 방화로 인해 소실되는 망신을 당할 뻔했다. 그것도 개인의 사소한 불만, 욕심 때문에 말이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지 못했다고 하여 흥인지문이나 숭례문에 방화를 하는 행위는 당연히 원하는 바를 이룰 수도 없는 수단임은 물론 자신의 나머지 인생에도 완전히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분노조절장애에 의해 충동적으로 하는 행동이라 하기에는 보물 1호에 대한 방화는 너무나도 노골적인 고의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정상참작의 여지도 주기 어렵다. 

흥인지문에는 소화기 21대와 옥외소화전 1대, 자동화재탐지설비와 폐쇄회로(CC)TV 12대, 불꽃감지기 등이 있다. 숭례문 화재에 대한 반성으로 대비를 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대비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관리사무소 측은 다수의 CCTV로 현장을 감시하고 있었으나 어두운 새벽이라 A 씨가 문을 넘는 것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으며 경찰의 연락을 받고 상황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A 씨는 어설프게 침입을 했는데 그마저도 포착하지 못했다. 방화범이 주로 야밤을 틈타 범행을 저지른다는 점을 봤을 때 이 시스템의 미 반응은 매우 치명적이라 할 수 있다. A 씨가 박스에 불을 붙인 것이 아닌 숭례문 화재 때처럼 신너 등 발화물질을 가져 왔었더라면 그 때의 악몽이 재현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 숭례문 화재에서 우리는 엄청난 상실감을 느끼며 많은 것을 반성하기로 다짐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똑같은 실수가 또다시 반복될 수 있음을 알리는 일종의 경고와도 같다. 반성을 제대로 안 했다는 증거다. 그 누구도 우리의 소중한 보물에 해를 가할 수 없도록 앞으로는 제대로 지킬 수 있는 능력과 그런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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