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김병용 / 디자인 이연선]

▶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 출생-사망 / 1899년 8월 13일 ~ 1980년 4월 29일
▶ 국적 / 영국
▶ 활동분야 / 영화감독

9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나 에드거 앨런 포의 책을 읽으며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고, 후에 영화감독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감독이 되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읽던 아이, 알프레드 히치콕
알프레드 히치콕은 1899년 농산물 가게를 운영하는 부부의 9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학교를 졸업한 히치콕은 전신회사에서 기술자로 일을 하였으나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광고 회사로 이직하게 된다. 이때 그는 영화와 문학에 심취하게 되고, 특히 추리소설 작가 에드거 앨런 포의 책에 매료된다. 그만큼 포의 작품은 히치콕에게 많은 영감과 영향을 주게 되었는데, 훗날 히치콕은 자신이 공포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를 “포의 작품을 읽었기 때문”이라고 할 정도였다.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영화계에 두각을 나타내다
히치콕이 처음 영화계에 입문해서 한 일은 타이틀 작가와 미술 감독 등이었다. 그곳에서 일을 하며 영화 제작 기술에 대해 익힌 히치콕은 1922년 시모어 힉스(Seymour Hicks)와 함께 영화 <항상 부인에게 얘기하세요>를 연출하여 영화계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후 개인으로는 첫 작품인 <기쁨의 정원>과 두 번째 작품 <마운틴 이글>이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평범한 일상 속에 갑자기 공포가 스며든다는 히치콕만의 설정을 바탕으로 한 세 번째 영화 <하숙인>으로 히치콕 스타일을 세상에 알렸다.

-영화사의 길이 남은 기법, 맥거핀의 창시
이후 영화사 고먼트 브리티시(Gaumont-British)사와 계약한 히치콕은 자신이 바라오던 범죄 스릴러 영화를 제작하였다. 이 시기에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 <비밀 첩보원>, <사보타지> 등 자신의 대표작을 만들기 시작한다. 특히 <비밀 첩보원>을 통해 히치콕은 영화의 진행에 있어서 중요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관련성도 없는 장면을 넣어 관객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맥거핀’이라는 영화 기법을 창시하게 된다.

-새로운 진출, 미국으로 떠난 히치콕
1930년대 후반 히치콕은 영국을 떠나 미국에 진출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할리우드 데뷔작 영화 <레베카>는 아카데미상 작품상과 촬영상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미국에 입성하였다. 이후 히치콕은 자신의 강점을 살린 서스펜스 영화 <의혹>과 코미디 영화 <스미스 부부>, 첩보 영화 <파괴 공작원> 등 다양한 영화를 만들며 미국 내 최고 스타 영화감독이 된다.

- 자신의 영화사 실패 후, 인생작들을 만들어내다
이후 히치콕은 자신의 영화 제작사 트랜스아틀랜틱 픽처스(Transatlantic Pictures)를 설립했으나 연이은 영화의 실패로 영화사는 문을 닫게 된다. 하지만 히치콕은 신인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소설의 판권을 사서 연출한 영화 <열차 안의 낯선 자들>로 좋은 평가를 받으며 다시 한 번 도약하게 된다. 그리고 이 시기에 히치콕의 대표작들인 <이창>, <현기증>, <싸이코>, <새>등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국내 영화감독 박찬욱 등 히치콕의 팬을 자처하는 전 세계 수많은 영화감독이 히치콕의 스타일을 표방하며 그에 대한 존경을 표하고 있다. 영화 역사에 큰 획을 그은 히치콕. 그는 갔지만, 그의 자취와 영화는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영감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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