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김지영/디자인 이정선 pro] 2017년 올해는 6·25전쟁이 일어난 지 67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나라가 세계의 유일한 분단국가인 만큼 우리는 6.25전쟁이 어떻게 발발하였고 어떻게 우리나라가 분단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역사인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6·25전쟁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청소년들이 대부분이다. 획일화된 입시교육으로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공부는 국영수 위주로 집중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역사교육은 그 중심에서 밀려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2015년) 안전행정부의 여론조사결과 우리나라 청소년 절반이 6·25전쟁 발발년도도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젊은 세대들이 분단된 한반도의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지금부터 6·25전쟁에 대해 청소년들이 잘 알지 못하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다뤄보자.  
 
첫째, 6·25전쟁이 일어나게 된 배경.
 
1945년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8월 15일, 우리나라는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하게 된다. 하지만 8월 15일 광복 이후에도 미군과 소련군은 일본군을 몰아낸다는 이유로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우리나라에 주둔한다. 이후 미국과 소련은 우리나라를 서로의 이념인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세우고 싶어 논의했지만 각각 자신의 주장을 대립해 결론이 나지 못했다. 이에 미국과 국제연합은 남한만이라도 선거를 통해 정부를 만들자는 입장을 내놓는다. 남한에서는 남한만 선거할 수 없다고 반대하는 입장도 있었지만 결국 1948년 남한만의 선거가 치러졌고 1948년 8월 15일 남한 정부가 세워지게 된다. 북한도 그해 9월 9일 정부를 만들며 우리나라는 남과 북으로 나뉘게 된다.
 
둘째, 6·25전쟁의 발발년도는 1950년이다.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이 38도선 전 지역에서 총공격을 하며 시작됐다. 그동안 전쟁을 준비해왔던 북한군은 무력으로 남한을 침입한지 사흘 만에 남한 수도인 서울을 차지했고 이어 두 달 만에 경상도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남한의 전 지역을 차지했다.
 
셋째, 6·25전쟁은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었다.
 
잘 쓰지 않는 남침과 북침이라는 용어 때문에 학생뿐 아니라 많은 젊은 사람들이 헷갈려 한다. 남침은 ‘남한이 침략 받았다’는 뜻이고 북침은 ‘북한이 침략 받았다’는 뜻이다. 6·25전쟁이 남한이 먼저 침략한 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북침으로 잘못 쓰는 사람들은 남한이 침략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북침을 ‘북한 침략’의 줄임말로 여겨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넷째,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에 도움을 준 나라는 16개국이 넘는다.
 
6·25전쟁당시 사실상 미국을 중심으로 국제연합이 남한을 돕기 위해 16개국이 참여한 국제 연합군을 보냈다. 전투 병력을 파견한 16개국에는 미국·캐나다·콜롬비아·영국·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프랑스·그리스·터키·에디오피아·남아프리카공화국·태국·필리핀·호주·뉴질랜드가 있다. 이밖에 노르웨이·덴마크·이탈리아·인도·스웨덴에서는 의료지원을 해줬고 그 외에 여러나라에서 물자지원을 해주었다.
 
다섯째, 남한은 정전협정에 서명하지 않았다.
 
계속된 전쟁에 전세가 분리해진 공산군 측의 요청으로 1951년 6월부터 휴전회담이 개시되었다. 그리고 1953년 7월 27일 6·25전쟁이 발발한지 3년 1개월 만에 정전협정을 맺으며 한반도는 정전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이로 인해 남북이 분단된다. 당시 정전협정에는 UN군 총사령관 클라크ㆍ북한군 최고사령관 김일성ㆍ중공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가 서명했다. 하지만 남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휴전 반대를 주장하며 끝까지 서명하지 않았다. 국제법상 평시의 조약 체결에는 당사국 의회 등의 비준이 필요하지만, 전시의 조약 체결은 군사령관의 서명만으로 비준이 완료된 것으로 본다.
 
6·25전쟁으로 5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죽거나 다쳤고 천만 명이 가족과 헤어졌다. 6·25전쟁은 남한과 북한 모두에게 큰 상처를 준 전쟁이었다. 하지만 북한은 2013년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했고 이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미사일 발사 등 크고 작은 도발을 현재도 계속 자행하고 있다. 전쟁이 끝나지 않은 만큼, 젊은 세대들은 6.25전쟁을 늘 기억해야 하고 그 의미에 대한 교훈을 되새기며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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