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기자] 옛말에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지식에 대한 열정과 열망은 있지만 금전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 책을 도둑질을 해서라도 구해 읽는 열정에 차마 비난을 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이다. 그만큼 과거에는 지식에 대한 열정을 높게 평가했다. 

그런데 책 도둑이라 해서 다 같은 도둑일까? 책을 훔쳐 얻는 것이 지식이 아닌 금전을 얻게 되면 얘기는 당연히 달라지게 마련이다.

19일 경찰은 ‘장수생’ A(33)씨가 지난 1월부터 총 17차례에 걸쳐 고시서적 54권과 지갑, 휴대전화 등 422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쳐 절도 등의 혐의로 구속되었다고 밝혔다. 

A씨는 최근 안정된 직장을 구하는 여러 청년들처럼 대학교를 중퇴하고 지난 2015년까지 8년 동안 행정고시를 준비해 온 이른바 ‘장수생’이었다. 

오랜 고시생활로 인해 집으로부터 생활비가 끊긴 A씨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찜질방이나 PC방 등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범행을 저질렀다. 

하지만 지난 3월 10일 오후 11시 40분께 관악구 신림동의 한 독서실에서 고시서적 6권을 가방에 넣어가는 모습이 CCTV에 잡혔고 결국 덜미를 붙잡혔다. 

과거에는 지식의 탐구를 위해 책에 욕심을 내면 인정해 주었지만 지금은...(출처/픽사베이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고시 서적을 권당 1만원에서 2만원에 팔아 생활비로 썼다고 밝혀졌으며 경찰은 A씨가 훔친 책들을 매입한 혐의로 B(48)씨 등 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극심한 취업난으로 인해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인 공무원 등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것은 대부분의 청년들에게 필수코스가 되어가고 있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시험운도 좋아 금방 합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워낙 경쟁률이 높다 보니 대부분이 낙방의 쓴 맛을 보게 된다. 

이런 사람들 중 빠르게 다른 길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있는 가 하면 일단 판 우물을 끝까지 파보자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중 시험운이 없어 잘 안 풀리게 되면 장수생이 된다. 장수생들은 공부를 하는데 절대적인 시간을 소요하고 있으므로 경제활동을 하기 어렵기 마련. 따라서 가족들의 금전적인 지원이 거의 필수적이다. 

이 기간이 오래되면 본인도, 가족들도 지치게 마련이고 A씨처럼 지원이 끊기기 부지기수. 그리고 A씨는 오랜 공부기간으로 인해 사회생활에 진입해야 할 시기를 남들보다 늦게 가져야 되는 상황이 되어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이 된다.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오랜 시간을 공부했는데 그것 때문에 경제력이 없어져 A씨는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해 버렸다. 

그는 생계비를 얻기 위해 8년 동안 공부해왔던 세월을 버리게 되었고 앞으로도 자신이 원하는 길은 선택할 수 없게 되었다. 정말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의지가 있었다면 A씨는 아르바이트 등 정당한 방법을 통해 그 비용을 충당했어야 했다. 그러나 A씨는 같은 처지에 있는 힘든 고시생들의 등을 치는 방법을 선택했고 그 결과는 암울해졌다. 자신이 힘들 때는 남도 힘든 법이다. 그리고 그 힘듦을 알면서도 잘못 된 선택을 한 것은 그 행동이 생활비를 벌기 위한 생계형 범죄였거나 공부를 하기 위해 저지른 것이라 해도 비난을 피하기는 어렵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순간 정당성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저 핑계가 되고 변명일 뿐이다. 오래 공부했다면 그래서 결과가 잘 안 나왔다면 남들보다 더 노력해서 따라가려고 노력하라. 그 길 외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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