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기자] 19세기를 대표하는 석유왕이 ‘록펠러’라면 철강을 꽉 잡고 있던 강철왕은 바로 ‘앤드류 카네기(1835.11.25.~1919.8.11.)’이다.
그는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이민을 온 자로 오늘날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카네기는 방적공, 기관조수, 전보배달원, 전신기사 등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해 오다 철도 감독의 자리를 맡게 되었다. 그는 일을 하면서 여러 사업에 투자를 많이 했는데 엄청난 이윤을 벌어들였고 결정적으로 그가 구입한 농장에서 석유가 나오게 되면서 큰 부자가 된다.
그렇게 돈을 모은 그는 시대의 흐름상 철강의 수요가 점점 높아질 것을 예상하였고 1872년 톰슨 제철공장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철강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카네기는 안정적인 원료 공급과 생산 및 유통을 위해 1881년의 프릭 코크스 회사 합병이나 1886년의 홈스테드 제강소 등을 매입하여 사업을 더욱 확장해 나갔다.
그의 뛰어난 사업 수완으로 불과 10년 만에 32만 톤에 불과하던 생산능력을 300만 톤으로 성장시켰으며 사업 이윤도 200만 달러에서 4,000만 달러로 20배가량 증가하여 1890년 이후부터는 실질적으로 미국 제철사업을 장악하는 수준에 올라섰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카네기의 회사는 독점, 담합, 리베이트 요구, 정치인 매수, 노동단체 탄압 등 당시 재벌들이 부를 축적할 때 저지르는 비도덕적인 행위들을 저질러 카네기는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92년 카네기는 기존의 철강 관련 사업체를 하나로 묶어 카네기 철강 회사라는 트러스트를 결성하게 되는데 이 회사는 미국 철강 생산의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위력을 뿜어내기도 했다.
10년 후 카네기는 J. P. 모건에게 4억 8천만 달러에 회사를 매각하였고 모건은 다른 철강회사까지 포함하여 자본금 14억 달러의 세계 최대 철강회사 US 스틸을 설립하게 된다.
‘부자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록펠러와 카네기는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방식으로 부를 축적하여 소위 ‘악덕’이라는 이미지를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카네기는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데 집중을 하여 미국 전역에 3000개의 무료 도서관을 세우고 카네기멜론대학과 카네기박물관을 설립하는 등 자선사업을 펼쳤다.
그는 죽을 때 까지 약 3억5000만 달러를 기부했는데 오늘날의 가치로 환산하면 769억 달러(한화 약 86조 7,509억)에 이른다. 그는 이렇게 기부를 하고도 남은 재산 3,000만 달러 역시 자선단체 등에 기부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카네기는 인류는 사랑했지만 인간미는 없었던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인류 전체를 위한 기부는 적극적으로 했지만 무능한 개인이나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때문에 카네기는 평가가 매우 갈리는 인물 중 하나다. 그가 사회적으로 이룩한 것, 그리고 후세의 재벌들에게 모범적인 기부에 대한 영감을 준 것은 높이 평가할만하나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의 도덕적 문제가 오늘날에 와서는 크게 비난을 받을 행동이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최대의 철강회사를 이루어 강철왕으로 등극했던 앤드류 카네기. 그는 이제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재벌로 회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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