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문선아/ 디자인 이정선 pro] 1950년을 전후하여 미국에서 생겨난 로큰롤은 블루스, 컨트리, 흑인 가스펠이 섞여 만들어진 대표적인 흑인 음악 장르였다. 때문에 백인이 우대 받던 당시의 미국에서는 외면 받는 장르였다.

그런데 이런 흑인 음악을 미국의 대표 장르로 끌어 올린 인물이 있다. 바로 ‘백인’인 엘비스 프레슬리다.

조각처럼 잘생긴 외모에 그윽한 목소리와 호소력 있는 창법, 흑인 특유의 그루브까지 갖춘 그의 출현은 미국 사회에 그야말로 돌풍을 일으켰다.

혜성처럼 나타나 ‘흑인처럼 강렬하게 노래하는 백인 보컬리스트’라는 찬사를 받으며 인기의 고공행진을 달려 나간 엘비스 프레슬리. 세상에서 가장 화려해 보이는 그는 사실 가수가 되기 전 까지는 매우 가난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낮에는 트럭 운전을 하고 밤에는 근처 술집을 돌며 노래를 부르는 무명 생활을 했다. 그러던 그는 당시 4달러만 지불하면 자작 음반을 낼 수 있는 멤피스의 로컬 음반사 ‘선 레이블 스튜디오’에서 어머니의 선물을 위한 2곡의 노래를 녹음하게 된다.

이 때 프레슬리의 재능을 알아본 스튜디오 여직원은 그의 이름과 연락처를 받아두었다가 선 레코드 사장 새뮤얼 필립스에게 건냈고, 그로부터 1년 뒤 흑인 음악을 할 줄 아는 백인 가수를 찾던 필립스는 엘비스 프레슬리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로큰롤의 황제가 되었다.

미국 남부의 시골 사람이며 노동계급 후손이었던 엘비스는 완벽한 빈민층의 성공사례였다. 대서양 저편 영국의 비틀즈도 엘비스로부터 '가난한 사람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과 영감을 얻었다.

그는 크게 성공하여 막대한 부를 가졌음에도 성실함과 따스함을 잊지 않았다. 남을 도와주기를 좋아하고 베푸는 것을 즐겼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를 추모하는 발걸음이 멤피스를 향하고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이유는 가난이라는 환경 속에서도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성공을 이뤄낸 모습과 겸손을 잃지 않은 모습 때문이다.

8월 16일은 로큰롤의 황제로 불리던 엘비스 프레슬리가 세상을 떠난 지 39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의 개다리 춤과 그윽한 눈빛, 녹아드는 목소리가 새삼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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