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청소년들에게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시선뉴스를 구독하는 구독자들에게 한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제작되는 기획기사입니다. 본 기사는 사실적인 정보만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아직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사건의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혹은 해당 사실을 정확히 명시)을 원칙으로 합니다※

[시선뉴스 이호기자] 고려는 몽골에 치열하게 항쟁을 했지만 결국 많은 국토의 황폐화와 문화재의 상실 등으로 국력이 급격하게 약해져 강화를 맺게 된다.

몽골은 동유럽의 헝가리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몽골의 풍습에 따라 아들들에게 나누어 주어 원을 비롯한 여러 개의 나라로 나뉘게 된다.

원은 고려와 강화를 맺은 후 국정 간섭을 하기 시작한다. 특히 왜 까지 점령하려던 원나라는 정동행성이라는 관청을 만들고 왜를 치기 위한 군사 훈련과 조선을 했다. 하지만 원정 중 태풍을 만나 큰 피해를 입은 원은 왜를 치겠다는 마음을 접고 대신 정동행성을 고려의 정치를 간섭하기 위한 기관으로 사용했다.

 

원이 본격적으로 간섭하기 시작하면서 왕손들은 원나라에 보내져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원의 공주와 결혼하여 황제의 사위가 된 후 원나라의 지시에 따라 고려의 왕이 되었고 원에 충성을 한다 하여 이름 앞에 충(忠)이 붙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원에 갔다 온 왕자들에게는 통역관이나 환관, 호위무관 등이 곁에 있었는데 왕자들이 왕위에 오르면서 이들 역시 자연스럽게 권력을 갖기 시작했다.

또한 원에 관련하여 몽골어를 잘 하거나 매를 잘 다스린다거나 하는 사람들 역시 원의 총애를 받으며 권력을 키울 수 있었고 지방 권력가들이나 권세가 남아있던 문벌귀족들이 이들과 혼인 등으로 관계를 맺어 큰 권력 세력을 만들게 되었는데 이들을 가리켜 권문세족이라고 불렀다.

권문세족은 원을 지지하여 원나라 사람처럼 의복을 입고 때로는 이름을 원나라 형식으로 바꾸기도 했다.

탐욕스러운 것과 계급의 폐쇄성을 원한 것은 문벌귀족도 마찬가지였지만 권문세족들은 그 정도가 더 심했다.

그들은 기름지고 좋은 땅을 빼앗기 위해서 권세를 사용 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백성들의 땅을 강제로 빼앗고 노비로 부리기 시작했다. 노비가 늘어날수록 국가에 세를 내야 할 백성들이 점점 줄어들게 되었고 이로 인해 국고는 텅텅 비어갔다.

부실한 국고로 인해 왕권은 하염없이 떨어지게 되었고 권문세족들은 원만 쳐다보며 고려가 원의 속국이 되기를 바라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상황은 원의 간섭기가 끝나갈 때 까지 유지되었다.

자국의 독립성을 키우기 보다는 간섭 국가에 충성하여 권력을 잡길 원했던 권문세족. 침략국에 붙어서 권력을 키우는 세력들은 공통적으로 자국민들에게 더욱 악랄한 행동을 보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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