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본 콘텐츠는 동물과 관련된 다양한 사자성어(四字成語, 고사성어)를 소개하며 그 유래를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기사입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버릴 게 없는 소
소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예로부터 버릴 것이 없는 가축이었습니다. 농사일을 돕고 죽어서는 고기와 가죽을 남겼지요. 특히 털도 많아 겨울에는 따뜻한 옷을 지어 입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털 한 가락으로는 그리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습니다. 이렇듯 소의 털 한 가락에 얽힌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사자(四字)야! 놀자’ ‘구우일모(九牛一毛)’입니다.
→ 아홉 구(九) 소 우(牛) 하나 일(一) 털 모(毛)

‘구우일모(九牛一毛)’란 “아홉 마리의 소 가운데서 뽑은 털 하나”라는 뜻으로 매우 하찮은 것을 가리킵니다. 

구우일모(九牛一毛) 이야기
한나라 무제 때 ‘이릉’이라는 용맹한 장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군사 5천을 끌고 북쪽의 흉노족을 정벌하였습니다. 흉노족은 군사 3만 명으로 대응했지만 수 천 명을 잃어야 했고 다시 8만을 모아 대응했지만 도저히 이길 수 가 없어 결국 군사를 물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실은 이릉의 군대 역시 화살과 식량이 떨어져 어려운 상황이었죠. 잘못을 저지르고 흉노로 도망간 이릉의 부하는 이 사실을 흉노의 왕 선우에게 알렸습니다.

이에 선우는 물리던 군사를 되돌려 이릉의 군대를 공격했고 결국 이릉은 항복을 해야 했습니다.

포로로 잡힌 이릉은 목숨을 끊으려 했지만 훗날 복수를 다짐하며 치욕을 참기로 했습니다. 이런 이릉의 용맹한 모습에 선우는 자신의 딸을 아내로 주며 융숭한 대접을 해 주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한나라 무제는 이릉이 변심했다고 생각하여 이릉의 늙은 어머니와 처자를 모두 죽이려 하였습니다. 서슬이 퍼런 무제의 기세에 이릉의 친지나 신하들은 숨을 죽이고 있었지만 사관이었던 사마천만이 이릉을 변호하였습니다.

사마천은 “이릉은 불과 군사 5천으로 수배에 달하는 흉노족과 맞서 싸우다 화살과 식량이 떨어졌고 배신자까지 있어 패하였습니다. 이릉의 투항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훗날 기회를 엿보아 한나라에 충성을 다 할 것이니 헤아려 주시옵소서.”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 무제는 이릉을 감싼 사마천 역시 같은 반역자라 여기고 궁형(남성의 생식기를 자르는 형)이라는 치욕적인 형을 내렸습니다.

사마천은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담아 “처음에 궁형을 당한 후 자결을 하여 모두 잊으려 했네. 하지만 나 하나 죽는 일쯤은 소 아홉 마리에서 빠진 털 하나(九牛一毛)와 같으니 죽어봤자 개미 한 마리가 없어진 듯,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지 않겠나? 이런 치욕을 참고 견디며 살아 있는 것은 아버지께서 유언으로 남긴 역사서 ‘사기’를 아직까지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일세.”라는 내용으로 친구인 임소경에게 보냈습니다.

‘九牛一毛’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사마천은 당시 매우 견디기 힘든 치욕을 당했지만 그냥 죽어버리면 매우 하찮은 죽음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사기’라는 역사서를 완성시키는 대업을 이루어내죠.

자신이 아홉 소에서 나오는 하나의 터럭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나요? 마냥 실망하고 좌절만 할 것이 아니라 사마천처럼 더 큰 것을 보고 노력과 인내를 하는 것도 큰 용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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