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박진아 / 디자인 최지민] 스마트폰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조차 힘들어진 요즘.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밤에 잠이 들기 전까지도 잡고 있는 스마트폰은 우리 생활의 필수품이 되어 버린지 오래입니다.

1960~70년대만 하더라도 전화기 한 대로 온 마을 사람들이 다 함께 사용했던 귀한 물건이었지만 통신 시설의 확충과 전화자동화 등의 기술 진전으로 현재는 이동전화가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한국에 전화기가 처음 소개된 것은 1882년. 그러나 본격적으로 설치, 운영된 것은 1898년입니다. 이때는 텔레폰(Telephone)을 음차해 덕률풍이라고 불렀죠. 최초의 전화 통화가 이루어진 것은 1896년 궁 내부인데, 자석식 교환기가 설치되면서 이루어 졌습니다. 그러다, 우리의 전화 통신 산업은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변화가 생깁니다.

1910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한반도 내 모든 전화 사업권은 일본계 기업의 손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때부터 한반도 전역으로 통신망이 확대되죠. 하지만 한반도 내 일본인들의 편의를 위해서만 사용되었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사용 기회가 거의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1945년 광복 후! 드디어 모든 통신 사업 주도권을 찾게 됩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1950년 6·25 전쟁의 여파로 한반도 내 모든 통신망이 대파되게 됩니다.

1950년대에는 6·25전쟁으로 훼손된 통신 시설을 복구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였습니다. 훼손된 통신망을 복구하고 근대식 통신 시설로 바꾸기 위해 외국 기술자를 초청하기도 했죠. 그 결과 서울 중앙전화국 서국은 자동식 8천 5백 회선을, 대전전화국은 공전식 3천 회선을 복구, 개설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우리의 통신 시설은 황금기를 맞기 시작합니다.

1960~70년대. 경제 성장, 소득 증대에 따라 전화 수요가 급증하면서 통신 시설이 확장되었고, 통화 제도 및 방식에도 변화가 생기게 됩니다. 서울 광화문, 동대문, 성북, 신촌, 부산 초량의 새 회선 개통, 영등포, 인천의 자동전화 개통 등 통신 시설이 대폭 확충됩니다.

전국적으로 전화 수요가 늘면서 전화를 거는 횟수에 따라 요금이 부과되는 전화도수제가 도입되고, 시외통화 번호가 변경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폭증하는 시외전화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시외통화를 장거리 자동전화(DDD) 방식으로 전환하는데요. 1971년 서울~부산 간 장거리 자동전화가 개통되면서 전국 전화자동화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됩니다.

1980년대에는 농촌까지도 전화 자동화와 통화권 광역화가 이루어지고, 1천만 전화 회선이 공급되어 통신선진국으로 발돋움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약 1인 1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시대로 전화기는 생활필수품으로 대중화를 이루게 된 겁니다. 덕률풍에서 스마트폰 시대가 오기까지. 대중화를 이룬 전화기가 앞으로 또 어떤 변화가 생길지 기대가 모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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