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 기원전 7세기에는 아시리아가 기마전술과 철제 무기를 바탕으로 서아시아 대부분을 통일하게 된다. 아시리아는 정복지에 총독을 파견하는 등 중앙 집권 통치를 했으나 피지배 민족에 대한 강압적인 통치로 결국 반발을 사 4개국으로 분열하면서 멸망하게 된다. 

그리고 기원전 6세기에는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가 분열된 서아시아 세계를 다시 통일하게 된다. 다리우스 1세는 중앙 집권적 통치 체제를 정비하였고 20여 개의 행정 구역에 총독과 감찰관을 파견하였다. 그리고 페르세폴리스를 건설하고 도로와 역참제를 정비하였으며 화폐 제도와 도량형 정리 등으로 확실한 국가 체제를 수립하며 전성기를 이끌었다. 

페르세폴리스(위키피디아/Hansueli Krapf)
페르세폴리스(위키피디아/Hansueli Krapf)

페르시아가 아시리아와 달랐던 점은 피지배 민족에 대한 관용 정책을 실시했기 때문이다(나는 관대하다). 페르시아는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했지만 피지배 민족의 전통과 신앙을 존중해 주었다. 

그러나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에 패배하였고 이를 틈타 지방 총독들이 반란을 일으켰으며 기원전 4세기에 알렉산드로스가 침공하여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파르티아는 알렉산드로스 제국이 붕괴한 이후 이란계 유목민이 건국한다. 파르티아는 페르시아의 전통문화를 계승하여 페르시아의 언어와 문자를 사용하였다. 

파르티아는 기원전 2세기경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인더스강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했다. 로마 제국과 인도, 중국(한 왕조)를 연결하는 동서 무역로를 장악하여 중계 무역으로 번영했다. 

그러나 로마와의 대립으로 인해 쇠퇴의 길을 걷다 사산 왕조 페르시아에 멸망하게 된다. 

사산 왕조 페르시아는 이란계 민족이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부흥을 내걸고 3세기 초에 크테시폰을 수도로 하여 건국되었다. 파르티아와 똑같이 중계 무역으로 번영을 하였으며 페르시아어를 고용어로 사용했고 지방에 총독을 파견하여 중앙 집권 체제를 확립한다. 

그러나 비잔티움 제국과의 계속된 전쟁과 왕실의 내분으로 인해 결국 이슬람 세력의 침입으로 651년 멸망하게 된다. 사산 왕조 페르시아는 여러 민족의 문화를 융합한 국제적인 성격을 가졌으며 페르시아의 정통성을 이었기에 언어와 종교(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았으며 마니교가 출현했다. 그리고 이들의 금, 은, 세공기술과 양식은 중국과 한반도를 거쳐 일본까지 전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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