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조재휘 / 디자인 이연선]

▶ 앤드루 카네기 (Andrew Carnegie)
▶ 출생-사망 / 1835. 11. 25. ~ 1919. 08. 11.
▶ 국적 / 미국
▶ 활동 분야 / 철강 사업, 자선 사업

19세기 후반에 미국의 철강 산업을 거대하게 성장시킨 장본인이며 당대 최고의 자선사업가였다. 철강왕이라고 불린 앤드루 카네기가 세운 카네기 철강회사는 1900년대 미국의 철강 산업계를 독점했다.

- 어린 시절부터 철강회사 설립까지
카네기는 스코틀랜드 던펌린에서 섬유를 만드는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구멍가게를 운영했지만 좀처럼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카네기 집안은 184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로 이주한다. 어려서부터 얼레잡이, 방적공장 노동자, 기관조수, 전보배달원, 전신기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1853년 펜실베이니아 철도회사에 취직하게 된다. 남북전쟁에도 종군하였고, 1865년까지 이곳에서 근무하는 동안, 장거리 여행자를 위한 침대차와 유정 사업 등에 투자하면서 큰돈을 벌게 되었고 1892년 카네기 철강회사(後 카네기회사로 개칭)를 설립하였다.

- 젊은 나이에 큰돈을 벌다
장거리 노선에 침대차를 도입하여 큰 성공을 이루던 도중, 얼마 후 구입한 농장에서 막대한 석유가 터져 벼락부자가 된다. 카네기는 공업의 기초가 철강 산업임을 예견하고 석유로 축적한 재산을 바탕으로 철강업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여러 산업과 금융계통의 회사에도 투자하기 시작하며 30세쯤에는 연 소득이 5만 달러에 이르게 되었다.

- 미국의 철강업계를 지배하다
1890년대에 카네기 공장은 미국 제철업계 최초로 염기성 평로를 도입했다. 또한 카네기는 철강의 원료를 제공해주는 코크스 광산과 철광산뿐만 아니라 원료품들을 공장으로 수송할 배와 철도를 구입해 생산성을 높였다. 1889년 앤드루 카네기 소유의 모든 회사가 카네기 철강회사로 통합되었고 그 이후 회사는 미국의 철강업계를 지배했다. 1890년 미국의 철강 생산량이 처음으로 영국을 능가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카네기의 성공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카네기의 부를 나누는 시기
카네기는 산업계에서 은퇴한 채 자선사업에만 전심전력을 기울이는데 그 규모 또한 어마어마하다. 자신의 인생을 두 시기로 나누어 전반부는 부를 획득하는 시기, 후반부는 부를 나누는 시기라고 말하며 그만큼 사회 환원은 부자들의 신성한 의무라고 강조했다. 카네기는 기부에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이 있었는데 특히 맹목적이고 광범위하게 베풀어지는 단순한 자선에는 반대했다. 그 이유는 단순한 자선은 어떠한 효과도 가지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철학이 있기 때문에 자긍심이 강한 미국인들은 카네기를 철강왕으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 부의 사회 환원에 앞장서다
1902년 1월 당시로써는 천문학적 액수인 2천5백만 달러를 기부하여 공공도서관 건립을 지원하는 워싱턴 카네기협회를 설립했고 미국 전역에 2,500개의 도서관을 지었다. 그리고 재산 중 2억5천만 달러를 기부하며 대학, 병원, 공원, 음악당, 수영장, 교회 등을 짓게 하기도 했다. 그는 죽기 전까지 3억 5천만 달러 이상을 기부하여 카네기 재단 등 사회 복지시설 확충에도 크게 기여했다.

자신이 평생 모은 재산 90%가량을 사회에 환원한 ‘앤드루 카네기’. 그가 “많은 유산은 의타심과 나약함을 유발하고, 비창조적인 삶을 살게 한다”고 말한 사실은 요즘 부를 대물림하고 있는 많은 부자에게 큰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