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함과 재미로 승부한 이베이의 창업자 피에르 오미다이어 [어바웃슈퍼리치]
단순함과 재미로 승부한 이베이의 창업자 피에르 오미다이어 [어바웃슈퍼리치]
  • 보도본부 | 이호 기자
  • 승인 2019.07.17 16: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선뉴스 이호] 인터넷은 인류의 모든 삶의 패턴을 바꿔나가고 있는 중이다. 특히 실제로 물건을 보면서 구매를 했던 재래식의 쇼핑은 전자상거래 시스템의 도입으로 온라인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되어 유통과 판매 구조는 혁명을 맞게 된다. 

게다가 스마트폰을 위시한 모바일 디바이스의 발전으로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이 가능하기에 온라인 쇼핑은 그 날개를 달고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베이(ebay)가 있었다. 

이베이(ebay)는 세계적인 온라인쇼핑 기업으로 경매중심의 전자상거래 시스템으로 시작하였다. 이베이는 39개 국가에 진출해 있으며 3억 5,000만개 이상의 상품 리스트, 2,500만 이상의 판매자와 1억 명이 넘는 사용자가 사용하는 세계 최대의 전자상거래 기업이다.

인터넷에서 잠재력을 찾다

오미다이어 네트워크
오미다이어 네트워크

이베이의 창업자는 프랑스 태생의 이란계 미국인 피에르 오미다이어(1967년생)이다. 1995년 오미다이어의 여자친구는 캔디상자를 구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오미다이어는 이 내용을 인터넷 광고로 내었는데 순식간의 수십 명의 사람들이 그에게 상자를 팔겠다고 몰려들었다. 

이를 본 오미다이어는 인터넷을 통해 상거래를 하는 것이 큰 잠재력이 있음을 직감하였고 그해 9월 ‘옥션웹’이라는 개인 경매 사이트를 개설하는 빠른 행동력을 보였다. 

이베이의 탄생

1995년의 오미디야르(이베이)
1995년의 오미다이어(이베이)

그는 테스트삼아 부서진 레이저포인터를 올렸는데 이것이 캐나다의 고장난 레이저포인터 수집가에게 낙찰되었다. 팔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것까지 팔리는 것을 본 오미다이어는 전율을 느꼈고 옥션웹을 사업화 하여 1997년 eBay로 이름을 바꿨다. 

이베이는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였다. 1997년 중반에는 하루에 약 80만 경매를 처리하였고 1998년까지 100만 명 이상의 사용자를 확보하였다. 1998년에는 월트디즈니 CMO(마케팅총괄경영자) 출신인 맥 휘트먼을 영입, 주식시장에 상장되었다. 이베이의 상장 첫 날 주가 상승률은 163%로 구글의 상장 전까지 최고의 기록이었다.

단순하지만 재밌게
이베이는 온라인에 존재하지만 방식은 전통적인 경매를 따랐다. 판매자가 상품을 등록하여 일정 기간 동안 구매자들에게 노출되면 최종적으로 최대 가격을 제시한 구매자에게 낙찰이 되는 단순한 구조였다. 

또한 평소에는 볼 수 없는 희귀한 상품이 올라오거나 누구도 사지 않을 것 않은 별난 상품들이 올라오면서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었다. 

신뢰와 자선
또한 판매자와 구매자의 평점시스템을 도입하였고 2002년 보안성이 뛰어나면서도 간편한 전자결제시스템인 ‘페이팔(paypal)’을 인수하여 이베이의 신뢰성을 높이는데 성공했다. 

오미다이어 네트워크

오미다이어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하였고 이를 통해 보통의 사람들이 큰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기를 원했다. 그리고 공익재단과 벤처 캐피털의 성격을 모두 갖춘 ‘오미다이어 네트워크’를 설립하여 활발한 자선 활동을 이어가 이베이의 브랜드 이미지를 계속해서 좋게 만들고 있다. 

오미다이어의 때를 놓치지 않는 타이밍을 읽는 능력. 그리고 이를 실천하는 행동력. 그리고 정보의 평등을 고려한 그의 사고방식은 이베이가 세계 최고의 쇼핑 플랫폼이 되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