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항로 개척으로 최초의 세계일주 항해를 이끈 ‘마젤란’ [인포그래픽_세계인물편]
신항로 개척으로 최초의 세계일주 항해를 이끈 ‘마젤란’ [인포그래픽_세계인물편]
  • 보도본부 | 이연선 pro
  • 승인 2019.05.25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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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조재휘 / 디자인 이연선]

▶ 페르디난드 마젤란 (Ferdinand Magellan)
▶ 출생-사망 / 1480. ?. ?. ~ 1521. 04. 27.
▶ 국적 / 포르투갈
▶ 활동분야 / 탐험, 항해

16세기 초 포르투갈 태생의 에스파냐 항해가로 인류 최초의 지구일주항해의 지휘자이다. 마젤란해협과 태평양, 필리핀 제도 등을 명명하였다.

- 포르투갈에서 계속된 후원 거절
마젤란은 1480년 포르투갈에서 하급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1495년에는 인도 원정에 참가하기도 했으며 8년 동안 동남아시아 여러 교역소에서 해상무역 경험을 쌓았다. 그는 향료 제도로 가는 신항로를 개척하겠다는 생각으로 포르투갈 왕실에 세 번이나 후원을 요청하지만 연이어 거절당한다. 결국 마젤란은 다른 나라를 찾아가 방법을 찾아보기로 한다.

- 에스파냐와 협력해 신항로 개척
끝내 마젤란은 고국 포르투갈을 버리고 에스파냐와 협력해 원정을 떠나게 된다. 1517년 에스파냐의 세비야에 도착한 마젤란은 국왕 카를로스 1세에게 접근해 아프리카 남단을 우회하는 기존 항로 대신, 자신들의 영역인 남아메리카 하단을 우회하는 신항로를 통해 향료 제도로 가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카를로스 1세의 허락이 떨어지자 1년여의 준비과정을 거친 후 함선 다섯 척과 선원 260명으로 1519년 8월 세비야를 떠났다.

- 태평양 명명과 마젤란해협
남아메리카 남단과 티에라델푸에고 제도 북단 사이에 도착하기까지 또다시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으며 여기까지 도달하는데 많은 고초를 겪었지만, 마젤란은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지점을 발견하는 데 성공한다. 남하를 계속하여 1520년 11월 28일 험난한 항해 끝에 해협을 빠져나가 잔잔한 대양(大洋)에 이르자 이를 태평양(太平洋)이라 명명하였고, 지나온 해협은 마젤란해협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때 선단은 1척이 침몰하고, 1척은 도망하여 남은 것은 3척뿐이었다.

- 막탄섬에서 죽음을 맞이하다
하지만 마젤란은 연결 지점을 찾는 데 만족하지 않고 항해를 계속하며 1521년 3월 6일 오늘날의 괌에 도착하게 되고 10일 후에 필리핀을 발견한다. 마젤란은 원주민과 접촉해 식량과 정보를 얻지만 원주민 간의 분쟁에 불필요하게 간섭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호적인 부족을 거들어 다른 부족을 정벌하러 주변의 막탄섬으로 쳐들어가지만 원주민의 거센 반격으로 인해 패배했고 결국 이곳에서 마젤란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남은 일행은 여정을 계속해야 했고 엘카노의 지휘 아래 18명의 생존자는 스페인의 세비야로 귀환했고 이들은 값진 향신료들을 가져와 여행 경비를 훨씬 웃도는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 고정관념을 깨뜨린 마젤란의 세계 일주
원정대의 세계 일주는 이전 서양인들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뜨리기에 충분했다.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증명되었고 여러 대륙과 항로에 대한 잘못된 정보들도 수정되었다. 그리고 에스파냐는 마젤란의 위업을 계기로 포르투갈을 앞서는 해양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마젤란의 업적은 그의 대담한 발상과 최초의 세계 일주 항해를 훌륭하게 이끌었다는 데 있다. 그리고 태평양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횡단한 최초의 항해가로 평가받고 있다. 많은 탐험가가 새로운 항로 개척에 뛰어들었으나 의미 있는 성과를 보지 못한 반면 마젤란은 대항해시대를 연 선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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