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박진아, 이지혜 기자/ 디자인 이정선] ‘디아스포라’는 ‘흩뿌리거나 퍼트리는 것’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말로, 디아(dia)와 스페로(spero)의 합성어이다. 이는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이라는 뜻을 지닌다. 

오늘날에는 그 뜻에서 조금 더 나아가, 특정 민족이 자의적 혹은 타의적으로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국가에서 살아가는 난민, 인민 그리고 그 후손들을 총칭하기도 한다. 디아스포라는 본토를 떠나 항구적으로 나라 밖에 자리를 잡는다는 점에서 일정한 거처를 정하지 않고 목축 하는 삶을 일컫는 ‘유목’과는 사뭇 차이가 있다.

혹자에게는 디아스포라라는 말이 그리 익숙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예로부터 존재해왔고 이를 주제로 하는 세미나 혹은 각종 프로그램 등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에 그리 이상한 일이라고 할 것은 아니다. 실제 우리 역사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첫 번째 사례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잘 알려져 있듯, 일제강점기는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민족의 수난기를 말한다. 1910년부터 1945년 사이, 일제의 식민지 통치를 피하기 위해 많은 농민과 노동자들은 중국, 러시아, 하와이 등으로 이주를 결심한다. 

두 번째 사례는 광복 직후의 시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미군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이주를 하거나 전쟁고아들이 미국에 입양되면서 발생한 경우이다. 전자는 1950년대부터 1964년까지 약 6천 명에 달하는 여성들이 미군과 결혼하면서 미국으로 이주를 떠난 것이었고, 후자는 전쟁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을 위해 국제 구호활동 차원에서 해외 입양이 합법화 되면서 해외로 이주한 사례이다.

1960년대에는 정부와 민간에서 공동 추진한 브라질 농업 이민이 이루어졌고, 미국의 이민법 개정을 통해서도 이주가 진행되었다. 1970~80년대에는 특히 미국으로의 이민이 활발했는데, 대부분의 경우 가난하고 힘든 시기를 이겨내길 바라며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었다. 이에 따라 높은 학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세탁소나 건물 청소 등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마지막 사례는 IMF로 인한 이주이다. 1997년 우리나라가 IMF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구조조정, 정리해고 등으로 고용과 경제 사정이 불안정해졌고, 안정적인 삶을 위해 이주를 선택하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한 것이었다. 

한편 2015년 외교통상부가 발표한 재외동포 현황에 따르면 중국에 거주하는 동포는 285만 명, 미국에는 223만 명, 일본 85만 명, 캐나다 22만 명 그리고 우즈베키스탄 18만 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700만 명이 넘는 이주민들이 존재하는 오늘날,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국내에서는 이주민들의 역사 및 실태를 통해 한국 사회의 이주민과 난민에 대한 학술 세미나가 개최되기도 했고  65편의 영화와 프로그램 등을 통해 디아스포라의 문제가 다뤄지기도 했다. 수많은 이주민이나 난민 등에 대한 배제와 차별이 심화되어 가고 있는 상황을 되돌아보자는 취지에서 이처럼 여러 활동이 벌어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국경과 경계가 허물어져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디아스포라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자세가 요구되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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