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 조재휘 수습기자/디자인 이연선]

▶ 사이 영 (Cy Young)
▶ 출생-사망 / 1867.03.29. ~ 1955.11.04.
▶ 국적 / 미국
▶ 활동분야 / 야구

가장 위대한 투수를 논할 때 월터 존슨과 함께 반드시 거론되는 전설적인 투수

- 사이 영의 화려한야구 인생
사이 영은 1867년 오하이오주 길모어에서 5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농장에서 부모님의 일을 도와주면서 몇몇 세미 프로팀의 내야수로 뛰다 1890년 칸톤이라는 프로팀에 입단했다. 이후 내셔널 리그의 클리블랜드 스파이더스로 입단했고, 1891년에는 다승왕에 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클리블랜드에서 9년, 세인트루이스에서 2년을 보낸 후 1901년에 출범한 아메리칸 리그의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하고 이후 첫해에 33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운다.

1903년 사이 영은 그의 첫 월드시리즈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의 우승을 이끈다. 1904년엔 아메리칸 리그에서 첫 퍼펙트게임을 달성하게 되는데, 25와 1/3연속 무안타 이닝이라는 기록은 오늘날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이후 1908년 사이 영은 41살의 나이로 21승을 기록하며 보스턴 러슬러스에서 그의 선수 인생을 마감한다.

- 사이 영의 화려한 기록들
511승 316패. 749번의 완투. 지금의 야구 경기에서는 앞으로도 깨지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그의 기록. 그는 메이저리그 통산 22년 동안 30승대 시즌을 5번, 20승대 시즌을 10번 기록했다.그 외에도 최다 이닝 투구, 최다 선발 출장, 최다 완투, 퍼펙트게임 1회, 노히트 노런 3회를 기록했고 최다 패배 기록도 가지고 있다.

리그에서 다섯 번 다승왕을 차지했고 본인 최다승 기록은 1892년의 36승이었다. 15년간 20승 이상을 기록했으며 평균자책점에 있어서 2회 리그 1위를 차지했다. 사이 영은 아홉 해에 걸쳐 매해 40경기 이상 완투했고 리그 탈삼진왕은 두 번 차지했으며 리그 최다 완봉승은 아홉 번 차지했다.

- 사이 영의 업적을 기린 '사이 영 상'
사이 영 사후 그의 화려한 업적을 기려 1956년부터 매년 각 리그의 최고 투수에게 주는 상인'사이 영 상'이 제정되었다. 그 당시 MVP 경쟁에서는 투수보다 타자가 많이 유리한 편이었다. 이에 당시 야구계에서 그해 최고의 성적을 올린 투수만 따로 수상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마침 역대 최다승을 올린 사이 영이 사망하자 상 이름도 '사이영상'으로 정해졌다.

사이영상은 1956년 커미셔너 포드 프릭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원래 전체 리그에서 한 명에게만 수여되었으나, 1967년 프릭이 은퇴한 뒤 리그마다 한 명씩 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 사이 영이 밝힌 투수의 성공법칙 6가지
1. 투수는 시인과 같아서 태어난 것이지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2. 올바른 습관을 들여야 한다. 술은 하지 말고, 담배는 자제하고, 커피, 차 등의 기호품은 적당히 즐겨야 한다. 깨끗하고 시원한 물이면 그 누구한테나 충분하다.
3. 노력할 각오가 없는 사람은 투수가 될 생각도 해선 안 된다.
4. 침착함과 냉정함은 기를 수 있는 능력이기에 익혀야 한다.
5. 슬럼프가 올 때는 받아들이고 이겨내 계속 정진해야 한다.
6. 제구 할 수 있는 실력이 되지 않으면 일류가 아니니 제구부터 제일 먼저 신경 써야 한다.

사이 영은 공을 던지는데 재능이 있기도 했지만, 성공법칙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자기관리와 많은 노력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1800년대에 경기를 뛰었던 선수가 아직도 전설이라고 불릴 만큼 사이 영의 기록은 대단하다.

이렇게 많은 투구를 하고도 부상 한번 당하지 않았던 사이 영. 강력함은 물론 꾸준함으로 이러한 업적을 남긴 사이 영의 자세는 우리도 본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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