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김태웅 / 디자인 이정선] 전 세계인의 스포츠 ‘축구’. 축구는 월드컵이라는 축제를 통해 세계인을 하나로 모으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화합의 장 ‘축구’ 때문에 전쟁까지 일어난 경우도 존재하는데, 이른바 ‘축구전쟁’이라고 불리는 이 전쟁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축구전쟁은 1969년 7월 중앙아메리카에 위치한 두 국가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사이에서 열린 축구경기가 도화선이 되었다. 당시 제9회 멕시코월드컵을 앞두고 중앙아메리카 월드컵 예선 축구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6월 6일 온두라스 수도 테구시갈파에서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의 1차 예선전이 열렸는데, 이날 경기에서 온두라스가 엘살바도르를 1:0으로 이겼다. 그리고 6월 15일, Home & Away 방식으로 엘살바도르 산살바도르에서 2차전이 열렸고 이번에는 엘살바도르가 3:0으로 이기면서 양국은 1승 1무로 동률을 이뤘다.

결국, 양국은 3차전을 치르게 됐으며 6월 27일 중립지역인 멕시코시티에서 3차전이 열렸다. 전후반 동안 2:2로 막상막하의 경기를 보여준 두 팀은 연장전에 돌입했고 연장전에서 엘살바도르가 1골을 추가하며 승리를 거뒀다.

1, 2, 3차전에 연장전까지 가는 치열한 승부를 통해 얻은 엘살바도르의 승리. 하지만 이 승리 이후 두 나라는 극한의 감정대립으로 치달았다. 사실 두 나라는 이미 정치적, 경제적인 이유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던 상태였다. 엘살바도르의 주민 수십만 명이 온두라스령(領)으로 불법 월경한 사건이 시발점이 된 것이다.

이에 온두라스는 1969년부터 농지개혁을 실시했다. 이때 온두라스는 엘살바도르에서 넘어온 월경농민들을 농지수여 대상자에서 제외하고 국외로 추방하고 이에 공분한 엘살바도르 월경농민들은 온두라스에서 학대를 받았다는 소문을 퍼뜨린다. 두 나라 간 감정이 대립하던 상황 속에서 월드컵 예선 3연전이 열렸고, 전쟁의 불씨를 짚이는 도화선 역할을 한 것이다.

다시 예선 3연전 이후 상황으로 돌아오면, 승리한 엘살바도르는 자국민 추방에 대한 대응으로 외교단절이라는 카드를 내밀며 온두라스를 위협을 한다. 그러나 이에 온두라스가 먼저 외교단절을 선언해 버린다.

파국으로 치닫는 두 나라의 관계 속 결국, 예선전이 끝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은 7월 14일에 엘살바도르의 육군과 공군이 국경을 넘어 온두라스 공군기지를 공격하고, 보병 약 1만 2천 명이 온두라스로 진군한다.

약 사흘 동안 지속된 이 전쟁은 7월 19일 미국이 주도하는 미주기구(OAS)의 조정하에 엘살바도르가 무조건 철수에 합의하면서 종료되지만 4천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온두라스 국경지대에 정착했던 30만 명의 엘살바도르 농민이 정착지를 잃고 도시 빈민이 되었다. 축구로 시작된 이 전쟁은 향후 양국에 내전, 정치적 혼란 등 큰 문제를 가져왔다.

물론 양국 간의 이미 심리적인 문제가 존재했지만, 이처럼 축구경기는 쌓여있던 양국의 불만에 불을 지피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일전이 일반 경기에 비해 강한 승부욕을 발동시킨다. 하지만 스포츠는 스포츠일 뿐이다. 도를 넘어서는 감정이입은 삼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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