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 국회출입기자 / 박용한 북한학 박사] 결혼한다는 약속도 안 받고 소개팅에 나가도 될까? 만나기도 전에 무슨 결혼이냐, 일단 만나봐야 할까. 솔직히 딱 봐도 조건이 어려운 관계라 시간 낭비일까.
 
남녀 연애 얘기가 아니다. 남북한 대화를 두고 나오는 말이다. 논란 끝에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는 합의가 나왔다. 지난 5일부터 1박 2일 동안 문재인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다녀온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 실장은 언론 보도문을 통해 방문 결과를 알려왔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만나 4월 말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세 번째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한다는 내용이다.

청와대

올해 1월부터 시작된 정상회담 가능성은 지난달 가시권에 들어왔다. 청와대를 찾은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위원장이 김정은의 친서를 문 대통령에게 전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담 전망은 알 수 없었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드러내지 않자 회담 무용론에 힘이 실렸다. 문 대통령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며 속도 조절을 하기도 했다. 벌써 예단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북한 핵무장을 인정해준 합의’, ‘한반도 평화를 가져온 최고의 성과’ 하나의 현실을 두고 나온 평가인데 차이가 크다. 
  

청와대

이번 특사단 방북 결과를 보면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하였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북한의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이라는 단서를 달기도 했다. 여기에 ‘미국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용의도 드러났다. 그러나 이런 협상 의제 설정만으로 비핵화 성과를 가져왔다고 말할 순 없다. 그래서 비핵화 약속 없는 정상회담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상대방의 ‘선의’를 의심하는 시선에도 이유가 있다. 북한이 핵무기 고집을 이어온 걸 보면 믿고 대화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픽사베이

북한이 핵무장을 포기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 누가 핵무기를 포기 하겠나. 북한 입장에서는 소위 ‘고난의 행군’ 끝에 만들어낸 나름의 피땀 어린 결과다. 그러나 한국의 입장은 북한 핵무장을 인정할 수 없다. ‘차라리 우리도 핵무장 시작하자’는 주장도 이해가 간다. 이처럼 상호 입장이 갈라져 협상은 열리기도 전에 비관론이 나온다. 시간낭비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따라서 일견 협상 무용론도 이해는 간다. 
 
“해준다고 말했어?” “만나서 얘기하기로 했지”
“그래서 약속은 받았어?” “만나봐야 알지 나도 그렇고 그쪽도 그렇고”
“한두 번도 아니고, 시간 낭비야 만나지 마” “일단 만나서 어떤지 좀 보고”

협상장이 열리기도 전에 비핵화 합의가 나올 수는 없다. 만나봐야 약속을 할지 말지 결정할 수 있다. 이번 합의는 ‘협상을 시작하기로 했다는 합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평가를 예단하거나 과장할 필요가 없다. 벌써 비핵화 결과를 요구하는 건 ‘연목구어’와 다름없다. 물도 안 끓었는데 숭늉 찾는 격이다. 
 

청와대

남북대화를 시작한다고 비핵화 결과가 바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이 또한 마찬가지다. 아직 물이 끓지 않았다. 결혼 약속 없이 소개팅 할 수 있지만, 소개팅 한다고 반드시 결혼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협상이 실패하면 ‘기회비용’만 날아간다. 협상장에서 전략적 우위를 내주면 성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최근 이뤄진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 ‘조급하다’라는 지적을 신중하게 들어야 한다. 북한은 이런 약점을 눈 여겨 보고 비집고 들어올 수 있다. 아니다. ‘반드시’ 노림수를 두고 나온다.
 
협상은 제3의 대안을 만들어내는 창조 과정이다. 아직은 그 실체를 알 수 없다. 또한, 남북한 대화는 극도의 현실 정치다. 냉정한 거래 관계다. 일방의 완벽한 승리는 다른 쪽의 완벽한 패배를 의미한다. 내가 더 많이 가질 수 있지만 다 가질 수  없다. 한국도 북한도 미국도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협상장이 혼란스러워도 어떤 목적으로, 무엇을 거래해야 하는지 근본도 잊지 말아야 한다. 맛있으면서 살이 안 찌는 음식 고르기와 다름없다. 어렵다. 
 
성공도 실패도 뚜껑을 열어보고 말하자. 비관론에 막혀있거나, 샴페인을 미리 터뜨려서는 될 수 있는 게 하나 없다. 냉정하게 지켜보자. “대화는 환영한다. 그러나 결과는 책임져야 한다.” 이정도로 말하고 싶다.

박용한 북한학 박사 / 중앙일보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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