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 국회출입기자 / 박용한 북한학 박사] 지난달 25일 북한 아이스하키 선수단이 방한하면서 분위기가 띄워졌다. 남북 단일팀은 논란 끝에 출발할 수 있었다. 응원단이 묵호항으로 들어오면서 북한에서 불어오는 훈풍이 온도를 높였다. 이 정도 만으로도 충분히 파격적인 흐름이었다. 응원단과 고위급 대표단도 방한을 앞두고 있어 올림픽 평화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진출처 / 청와대

앞서 현송월 단장이 이끄는 점검단이 다녀가면서 일으켰던 파도보다 더 큰 파고가 넘어왔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여동생 김여정이 내려온다는 소식 때문이다. 그는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직함을 가졌지만 권력 서열을 논할 필요가 없다. 사실상 김정은 다음가는 권력자로 볼 수 있다. 북한은 왕정체제와 다를 바 없어 김여정 방한은 소위 ‘백두혈통’이 움직였다고 볼 수 있어서다.
 
김여정이 온다는 소식에 정상회담 바람이 서서히 일었다. 정부 당국자들도 조심스럽게 평창 겨울올림픽 축하를 넘어선 다른 목적도 있다고 전망했다. 김여정의 개막식 참석에 이어 청와대 접견 계획이 발표되자 기자실에서는 사실상 정상회담을 위한 예방으로 심증이 굳어지고 있었다. 이런 전망이 나온 배경이 있다. 지난달 김정은의 신년사가 남북대화를 암시하더니 곧장 남북 접촉으로 이어져 북한의 속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이 예전과 달리 빠른 전개를 보여줬다. 이미 지난해 말부터 남북한 사이에 교감을 이어갔던 것을 나중에 드러났다. 
 

사진출처/청와대

김여정은 청와대 접견에서 본인을 김정은이 보낸 특사로 소개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 김정은’의 친서를 건넸다. 평양으로 문 대통령을 초청한다는 메시지도 구두로 전했다. 북한이 올림픽에 응원단과 공연단 파견에 이 한 번 더 파격적인 조치를 내놨다. 초청장을 받아든 정부 당국자의 표정관리가 어려울 정도였다. 

사진출처/청와대

그런데 마냥 웃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펜스 미국 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는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펜스 부통령은 개막식에 앞서 열린 환영 만찬에는  5분 동안 머물다 자리를 비웠다. 올림픽을 앞두고 북핵 문제가 해결점을 찾지 못한 가운데 대북 제재의 수위를 키워가던 경로였다. 올림픽 휴전을 했지만 대북 제재를 철회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북한이 비핵화에 나설 때까지 국제적 공조를 강화한다는 공감대가 컸다.
 

사진출처/백악관

미국도 딜레마는 있다. 대화로 위기를 해결하자는 대명제를 부정할 수 없어서다. 불론 비핵화 의지를 충실히 드러낼 북한의 노력이 없는 가운데 열리는 회담은 ‘대화를 위한 대화’로 가치가 적다. 그럼에도 무작정 덮어놓고 반대만 할 수 없어서다. 자칫 오히려 미국이 비핵화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비난 화살도 피해야 한다. 달걀을 너무 강하게 쥐면 깨지고 힘을 너무 놓으면 떨어뜨려 깨지는 형국이다.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다 주변국의 동의를 만들지 않고 대화에 나서면 북한을 비핵화로 유도할 수 없고 국제적인 비핵화 연대에서 일탈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북한이 던진 회심의 카드에 손익 계산에 들어간 이유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정상회담 제의를 받고 여건을 만들어 가자고 답했다. 북미 대화 필요성도 강조해 핵문제 해결을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한국 정부는 11일 김여정이 북한으로 돌아간 뒤 전략 마련에 고심이다. 정상회담에 응한다는 대원칙과 방향은 정했지만 구체적인 접근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한미 동맹과 비핵화 국제 공조를 유지하면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여건 마련에 들어갔다. 
 
전망은 희망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비관적으로만 볼 수 없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만든 꾐에 말려 들어가 핵무기 만들 시간만 준다는 우려가 나온다. 북한이 대북 제재 앞에서 꼼수를 부렸는데 위장평화에 한국이 쉽게 속아 넘어간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최대의 압박’은 관여 정책이 함께 이뤄 질 때 효과를 본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시 한 번 달걀 잡기 딜레마에 빠진다.
 

사진출처/청와대

운전대를 잡겠다는 문 대통령의 바람은 현실이 됐다. 이제 운전 실력을 보여줄 때가 됐다는 얘기다. 물론 험난한 길을 지나야 한다. 핸들이 여기저기로 의도치 않게 움직일 수 있다. 중간 중간 돌발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순간순간 여러 갈림길이 나와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하는 위기도 온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돌아올 수 없는 길이라면, 사고를 피할 수 없는 길이라면 그때는 아쉽지만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어려운 요구다. 앞뒤 좌우 신중하게 둘러보면서 안전운전 해달라는 바람이다. 한반도는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한 도전 길에 놓여있다.

박용한 북한학 박사 / 중앙일보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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