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김태웅 / 디자인 최지민] 유럽은 약 40개국의 다양한 나라들이 몰려 있는 대륙이다. 그런 유럽의 중간지역에 위치해 오랫동안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중립국의 위치를 유지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스위스다.

스위스는 1648년 체결된 웨스트팔리아 조약 이후 400년이 넘도록 전쟁에 휘말리지 않고 중립국의 위치를 지켜왔다. 어떻게 스위스는 중립국이 된 걸까?

스위스는 지도상으로 봐도 강대국에 둘러 싸여있어 지리적으로 침략에 취약한 나라다. 서쪽으로는 프랑스, 스페인 동쪽으로는 독일, 이탈리아 등 미중러일 사이에 있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이다.

강대국들의 위협을 견뎌내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난 스위스는 중세이전까지만 해도 로마제국, 프랑크왕국, 신성로마제국의 일부였다. 그러나 14세기 스위스의 몇 개 지역이 ‘헬베티아연방’이라는 동맹체를 만들며 독립을 위한 싸움을 시작한다.

결국 스위스는 15세기 신성로마제국의 침략을 이겨내고 바젤 조약, 베스트팔렌 조약에 따라 독립하게 된다. 독립에 성공한 스위스는 강대국 사이에서서의 중립적인 위치를 표방하고 그 일환으로 그들의 용맹한 군사를 해외로 파견한다.

스위스의 용병은 아주 용맹하기로 유명하다. 프랑스혁명 때 루이16세를 지킨 사례,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을 구한 사례 등 용맹한 스위스 용병에 대한 이야기 등이 있다. 실제로 로마교황청이 아직까지도 스위스 근위병만을 고용하고 있을 정도다. 당시 가난했던 스위스 경제에 용병파견은 큰 보탬이 됐다. 

한 세기 이상 용병을 통해 외화벌이와 유명세를 얻게 된 스위스는 군사력과 외교력을 기반으로 강대국들이 참여한 1815년 빈 회의, 1856년 파리 회의에서 최초로 ‘영세중립국’의 지위를 얻게 된다. 이는 비동맹국가인 동시에 중립 수호를 위한 군사력도 보유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은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보불전쟁(1870년), 1차 세계대전(1914년~1918년)이 발발하는데, 이때 스위스의 중립국 위치가 더욱 더 공고해진다. 스위스는 두 전쟁에서도 휘말리지 않고 어느 나라도 스위스 국경 안으로의 이동을 금지 했다. 물론 스위스의 계속해서 만발의 준비를 한 강력한 국방력이 이를 가능케 했다. 반면 똑같이 영세중립국을 표방했던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는 독일의 침략으로 엄청난 전쟁피해를 입게 됐죠. 스위스의 군사력이 중립국의 위치를 지키는데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스위스는 2016년부터 징병제예비군 제도를 폐지하며 현재는 군사력이 많이 줄어든 상태다. 과거 40만에 이르던 군사력은 2013년도 기준 현역 약 14만, 예비군 약 8만을 합쳐 총 22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북한과 같이 직접적인 위협국이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주변에 위협국이 없는 스위스의 상황을 고려하면 여전히 국방력을 중시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또 스위스는 정규군 외에도 예비군과 민병대가 잘 조직되어 있는데, 예비군을 포함한 민병대는 탄약을 제외한 총기와 같은 군사장비를 보유할 수 있다. 유사시 대비를 위한 정책인데, 총기소유가 가능한 국가인 이유도 역사적인 배경에 그 이유가 있다. 

스위스가 중립국이 된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봤다. 이처럼 스위스는 자연스럽게 중립국이 된 것이 아니다. 중립국의 위치를 얻기까지 끊임없는 싸움과 노력이 있었다. 지리적으로 스위스와 비슷한 대한민국. 그들의 중립국 역사를 통해 우리나라의 상황을 극복하는 교훈을 얻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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