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에 나온 정치의 미래란 책이 있다. 테드 할스테드(Ted Halstead)와 마이클 린드(Michael Lind)라는 미국의 정치평론가들이 지은 책인데, 미국 안팎에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이 책의 부제(副題)가 ‘디지털 시대의 신정치 선언서’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미국 정치가 21세기의 시대 흐름에 맞게 개조되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자들에 따르면, 미국 유권자들 가운데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 층이 상당히 두터운 편이며, 이 무당파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 이유는 양당 모두 여전히 낡은 관념과 방법론을 고수함으로써 급변하는 시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치의 미래』의 저자들은 그 대안으로서 ‘혁신적 중도주의(Radical Center)’를 주창하고 있다. 이들은 다원화 시대에 살고 있는 미국의 유권자들은 다양한 이념적 성향을 띠고 있는데, 민주당과 공화당은 각기 자신들이 내놓는 극단적인 메뉴들만을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모순에 빠져 있다고 강조한다. 개개 유권자들은 사안에 따라 공화당의 정책 노선과 민주당의 정책 노선을 취사선택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기존의 진보와 보수적 틀을 넘어서서 시대 흐름에 맞는 보다 실용적인 전략과 정책 수단을 강구하는 ‘새로운 정책 정당’의 출현을 기대한다는 취지이다.
 

   10년이 더 지난 지금 시점에서 이 책을 읽어보더라도 나름대로 설득력이 느껴진다. 앨빈 토플러(Albin Toffler)도 언급했듯이 다른 부문에 비해 정치권의 변화가 너무 지체되어 그 혁신의 필요성은 더욱 크다고 하겠다. 이것은 정치인들이 시대 흐름에 둔감한 탓도 있겠지만, 변화를 도모하기에는 그들이 누리고 있는 기득권이 너무 크고 달콤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정당과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주의(主義)와 주장을 극명하게 설득하려 하지만, 유권자 대중은 입장과 생각이 복잡다단하여 거기에 눈길을 주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기존의 정당과 정치인들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얘기들만을 늘어놓는 관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원론적으로는 위 책의 저자들이 제시하는 ‘혁신적 중도주의’와 ‘새로운 정책 정당’이 기존 정당들을 뛰어넘는 대안으로서 그럴 듯하지만, 중요한 것은 제3의 정치 세력이 성공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객관적으로는 어느 정도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를 추동할 세력을 형성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의 경우에도 공화당과 민주당을 뛰어넘는 제3의 정당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나마 양당의 개혁 노력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적대적 공존’ 때문에 최소한의 개혁마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 연방정부가 개점휴업이라는 최악의 위기에 직면했던 것이 양당의 구태를 방증하고 있다.
 

   눈을 안으로 돌려보면, 대한민국이야말로 정당 혁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이끌어온 새누리당과 민주당에 대해 새로운 시대를 계속 주도하기에는 너무 낡고 부족한 세력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과거’의 향수에 젖어 새로운 물결을 받아들이기에는 고루한 편이고, 민주당은 ‘개혁’과 ‘진보’를 부르짖고 있지만 운동권 시절의 투쟁적이고 반(反)제도적인 행태를 답습하고 있는 편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대체하는 제3의 정당이 출현할 법도 하건만, 그동안 있었던 이런 실험들은 모두 실패했다. 견고한 지역주의가 신진 세력의 등장을 가로막았던 이유가 가장 컸다.
 

 

   그러나 기존 정당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인내심이 바닥나는 상황으로 가고 있어 신당이 출현하기에는 과거보다는 유리한 환경에 있다. 지역주의도 완화되고 있다. 게다가 대한민국 정당들은 ‘포말(泡沫) 정당’의 성격이 강한데, 한때 정당 제조기였던 3김(金) 씨들은 퇴장한 지 이미 오래 되었고, 그 후계자들의 입지는 그렇게 강하지 않다. 비록 지금은 박근혜 대통령의 강한 영향권 아래에 있는 새누리당은 건재하고, 민주당 역시 대주주인 ‘친(親)노무현 세력’이 당을 장악하고 있어 쉽게 흔들릴 수는 없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 이후가 잘 보이지 않고, 민주당은 계파 간 갈등이 심각한 데다 친노무현 세력에 대한 당 안팎의 여론이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는 점 때문에 사상누각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런 조건에서 ‘안철수 신당’이 태동을 준비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당은 성공할 것인가? 이에 대해 현재로서는 정답을 내놓기가 어렵다. 앞으로의 정세에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신당 주도 세력의 행보에 따라 민심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신당에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예전에 제3세력이 맞서고자 했던 기존 정당들에 비해 지금의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허약하고, 지식정보 시대의 특성에 신당이 상당히 부합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안철수 의원이 2년 전 ‘깜짝 스타’로 등장한 이후 신정치를 갈망하는 유권자들의 기대에 다소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신당의 미래에 걸림돌이다.
 

   지금부터라도 안철수 신당은 제대로 된 설계를 통해 의미 있는 출발을 해야 한다. 기존 정당들과 어떻게 차별화할 것이며, 스스로의 정치적 좌표와 정체성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를 심도 있게 검토해야 한다. 지금까지 보여준 것처럼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과오로부터 오는 반사적 이익을 누리는 데 만족하거나, 원론적 수준의 비평에 그치는 수준으로는 대안 세력으로 인정받기가 어렵다. 신당 주도 세력은 지난 2년 동안 아마추어리즘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아마추어리즘은 순수성을 인정받을 수 있지만, 유력한 대안 리더십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아직은 어설픈 점이 있더라도 국민들의 심금을 울리는 그 무엇은 있어야 한다.
 

   단기필마나 다름없는 안철수 신당이 새누리당과 민주당이라는 거함(巨艦)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이삭줍기’와 같은 골목 정치로는 어림도 없다. 말 그대로 돌풍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된다. ‘안철수 현상’이 시작될 무렵만 하더라도 그럴 가능성이 지대했지만, 안철수 의원 스스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것은 안 의원이 ‘야권 연대’라는 잘못된 프레임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자신, 야권 단일화 후보조차 되지 못했다. 야권 단일화를 상정하더라도 전술적 수준에서 검토되었어야 하는데, 처음부터 야권의 일원임을 자처했기 때문에 친노무현 그룹의 책략에 말려들고 만 것이다.
 

   요컨대 안철수 의원 자신이 낡은 세력이라 지칭했던 민주당과의 연대에 매달림으로써 제3세력의 필요성을 절감하던 국민들이 볼 때는 일종의 배신행위로 비쳤을 터이다. 그 이후에는 안 의원 진영에 다소 변화가 엿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야권 연대’ 프레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한 것 같다. 이런 틀과 완전히 결별하지 못한다면 안 의원 그룹에 미래는 없다. 이들이 야권 연대에 연연하는 것은 자신들이 기대하는 지지 기반이 호남 지역 등 전통적인 민주당 텃밭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정치공학으로는 새누리당보다는 민주당의 기반을 뒤흔드는 것이 세를 확장하는 지름길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식의 자잘한 셈법이 통용될지는 회의적이다.
 

   작금의 정국에서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 비판을 받고 있지만, 민주당에 대한 비판 강도가 더 센 것 같다. 그렇게 불철주야 투쟁을 전개했는데도 새누리당은 물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안철수 신당에게도 한참 뒤지는 성적표를 받고 있는 현실은 과연 민주당의 존재감이 있는지조차 의문스럽다. 새누리당은 집권 여당으로서 무한 책임감 때문에 그럴 수 있겠지만, 야당인 민주당은 민심과는 엉뚱한 방향으로 주행함으로써 텃밭에서부터 지지를 상실하고 있다. 민주당 안에는 훌륭한 정치인들이 적지 않게 포진해 있지만, 친노무현 세력의 ‘어게인 2017 전략’에서 나오는 ‘묻지마 투쟁 노선’이 민주당을 멍들게 하고 있다.
 

   이 틈새를 안철수 신당이 파고드는 격인데, 신당이 민주당을 대체하기 위해서라도 민주당과 완전히 선을 그어야 가능하다. 신당이 민주당과 손을 잡는 순간, 다시 말해서 ‘낡은 세력’과 동거를 하는 순간, 신당 역시 ‘사이비 개혁 신당’일 뿐이다. 신당의 성패를 좌우할 관건은 정국의 독립변수가 되느냐 아니면 종속변수가 되느냐이다. 적어도 독립변수가 되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독자적인 비전과 정체성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물론 사안에 따라 여타 정당과 연대를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술적 제휴에 그쳐야지 전략적 제휴로 나아간다면 독자성은 사라지고 낡은 세력의 우군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어떤 이들은 ‘1987년 체제’의 한계를 거론한다. 1987년에 만들어진 현행 헌법과 이로부터 파생하는 작금의 정치 현상의 문제점을 비판할 때 이런 논법을 사용하곤 한다. 부분적으로는 그런 지적이 타당하지만, 필자는 그것보다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6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의 현대사와 함께 해온 기존 주요 정당들이 질적인 발전을 하지 못한 채 21세기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다는 점이 본질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산업화와 민주화 등 대한민국의 발전에 기존 정당들이 기여해온 점이 상당히 있겠지만, 적어도 미래의 주역이 되기에는 시대착오적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치의 혁신이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안철수 신당을 논평하는 것은, 대한민국도 다당제 구도로 가는 것이 바람직한 게 아닌가 하는 필자의 희망 때문이다. 지금 우리 국민들이 목도하고 있듯이 야당 등 반대 진영은 정부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역력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이런 양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제3의 정치 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면 꼭 안철수 신당이 아니더라도 유력한 제3세력이 떠오른다면 양자 대결 구도보다는 훨씬 안정적인 정립(鼎立) 구도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유권자들의 기호가 다변화되는 시대에서 두 정당으로서는 이를 담아내기가 어려운 것임을 이제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