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특별기획Ⅳ> 자세하게 알아보는 북한의 후계자론
<단독-특별기획Ⅳ> 자세하게 알아보는 북한의 후계자론
  • 보도본부 | 김광웅
  • 승인 2013.10.3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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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김광웅] 3대 세습.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이런 단어를 듣기는 쉽지 않다. 그만큼 북한은 후계자 세습에 큰 힘을 쓰고, 노력하고 있다.

김일성부터 김정일을 거쳐 김정은까지. 북한의 여러 제도와 과거 역사를 통해 그들이 정립한 후계자론을 살펴보자.

북한에서 후계자 문제의 과거 학습효과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북한에서 후계자는 전민중적 추대에 기초해서 새 세대의 인물을 선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수령의 생존 시에 선출해야 하고, 그의 지도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배경은 소련에서의 스탈린 비판 및 격하운동(중소이념적 갈등 즉, 수정주의 vs 교조주의)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소련이 스탈린 사후에 후르시쵸프와 같은 수정주의자가 나타난 것은 말렌코프라는 후계자를 지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도체제를 수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중국에서 발생한 혁명전통과 후계자 문제에 대한 투쟁 사실을 목격한 것이 심대한 교훈을 안겨 주었다. 즉, 1966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모택동의 후계자로 지목된 유소기의 제거와 임표와 4인방(강청, 왕흥문 등)의 등장을 가져왔다. 이로 인해 등소평과 주은래 등의 항일 1세대 원로들에 대한 숙청과 억압을 가져왔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의 4인방과 등소평 세력 간의 투쟁에서 화국봉을 중심으로 한 중간세력이 일시적으로 권력을 장악했으나, 결국은 등소평의 개혁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특히 중국의 권력 투쟁에서 1971년 임표의 군사쿠데타 음모가 북한지도부에서는 커다란 충격과 위기감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은 혁명전통의 파괴와 살아있는 혁명의 최고지도자를 폭력으로 전복하고자 했다는 의미에서 그 심각성이 더했던 것이다.

이것은 1969년 중국 공산당 제9전대회에서 당 규약에 “임표 동지는 모택동 동지의 친밀한 전우이며 계승자”라고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전례가 없는 규정까지 만들었을 정도였지만, 결국 계승자가 권력 찬탈을 노렸던 것은 중국은 물론 북한에게도 큰 충격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1953년 스탈린 사망 이후 소련에서의 후계문제 실패의 교훈을 기억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중국에서의 임표 반란과 뒤이은 4인방의 걷잡을 수 없는 혁명 1세대 원로들에 대한 공격이 후계문제에 심중한 교훈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결국 북한은 당시 후계자의 지도체제는 수령이 생존 시에 선출된 후계자가 수령의 혁명위업을 계승하기 위한 것이 필수적 조건이며, 이를 통해서 후계자의 ‘유일관리’가 실현된다고 보게 된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에 이르면서 전대미문의 3대 권력세습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이른바 후계자론의 내용적 구성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아보자.

북한의 후계자론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후계자의 자질과 관련된 ‘인물론’, 후계자의 지위 및 역할과 관련된 ‘계승론’ 그리고 후계자의 권력 구축과 관련된 ‘지도론’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들 각각은 수령론과 하나로 연결되어, 수령에 대한 충실성, 수령의 영도 계승, 그리고 수령의 영도체계를 실행하는 지도체제의 문제와 연관되고 있다.

후계자론에 따르면 후계자는 “수령의 사상과 업적으로부터 수령의 사업방법, 작풍, 품격에 이르는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 안고 수령의 대를 이어가는 당과 인민의 지도자이며 수령이 개척한 혁명위업을 계승하고 끝까지 완성해나가는 미래의 ‘수령’으로 정의된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후계자 역시 ‘수령’으로서의 지위와 역할을 부여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물론’에 따르면 후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무엇보다도 ‘수령’에 대한 충실성이다. 이는 북한이 늘 강조하고 있는 수령의 혁명위업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선대 수령에 대한 충실성이 보장되지 못하면 계속 혁명의 과제를 수행하지 못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는 스탈린 사후의 흐루시쵸프의 등장과 같은 수정주의에 의해 ‘수령’의 지위와 역할이 변질될 것을 우려한 것에서 나온 것이다.

북한에게 계승은 수령의 ‘대를 이은 충성’을 구조적으로 계승하는 것보다도 어떤 인물에 의해 계승되는지가 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후계문제는 본질에 있어서 ‘혁명위업을 누가 어떻게 계승하는가의 문제’로 귀결되고 ‘인물론’이 전체 후계자론의 핵심을 관통하는 이론적 구성물로서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후계자는 자연스럽게 수령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에 기반하여, 수령의 사상과 혁명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며, 수령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사업을 가장 우선적으로 수행해야 할 임무를 부여 받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수령의 지위와 역할을 계승하기 위해서는 사상과 이론 및 방법의 전 영역에서 수령의 위업을 보좌하고 계승해야 하는 것으로 이것이 후계자의 계승론으로 현재 김정은의 각종 행태가 이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제9조 제2항의 ‘모든 사업을 수령님의 유일적 령도체계에 의거하여 조직 진행하며 정책적 문제들은 수령님의 교시와 당중앙(김정일을 지칭)의 결론에 의해서만 처리하는 강한 혁명적 질서와 규률을 세워야 한다’를 '모든 사업을 당의 유일적 영도 밑에 조직 진행하며 정책적 문제들은 당 중앙(김정은을 지칭)의 결론에 의해서만 처리하는 질서와 규율을 세워야 한다'로 개정했다.

그리고 제10조 제1항에서 ‘전당과 온 사회에 유일사상체계를 철저히 세우며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빛나게 완수하기 위하여 수령님의 령도밑에 당중앙의 유일적지도체제를 확고히 세워야 한다’를 '당의 유일적 영도 체계를 세우는 사업을 끊임없이 심화시키며 대를 이어 계속해나가야 한다'로 개정했다.

또한 제10조 제2항에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이룩하신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고수하고 영원히 계승발전시키며 혁명전통을 헐뜯거나 말살하려는 반당적 행동에 대해서는 그 자그마한 표현도 반대하여 견결히 투쟁하여야 한다’를 '우리 당과 혁명의 명맥을 백두의 혈통으로 영원히 이어나가며… 그 순결성을 철저히 고수하여야 한다'로 개정했다.

여기서 '백두의 혈통'은 김일성 왕조를 신성시하려는 북한식 표현으로 이러한 표현을 추가한 것은 김정은의 권력 계승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이러한 개정을 전반적으로 볼 때, 북한의 유일사상 10대 원칙의 개정은 이른바 북한지도부가 김일성 일가를 지칭하고 있는 백두의 혈통을 강조하면서 3대 권력세습을 명문화하고, 김정은 시대에 맞는 체제의 성격과 진로를 규정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북한은 개정한 원칙에서 '김일성'이라는 문구를 '김일성·김정일'로 바꾸고 '김일성의 혁명사상'을 '김일성·김정일주의'로 변경하였다.

이것은 김정일을 김일성과 동급으로 격상시킴과 동시에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체제의 정통성을 부여하고 김정은의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유일사상 10대 원칙을 개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북한의 수령절대주의체제 확립과 ‘유일사상 10대 원칙’의 연계성을 어떻게 설명 가능한가?

김정일은 유일체제의 확립을 위하여 당 사상사업 부문 일꾼들 앞에서 “온 사회를 김일성주의화하기 위한 당 사상사업의 당면한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라는 연설을 통해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하고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를 당 사상사업의 총적 임무로 제시하였다(탁진 외,『김정일지도자(1-3부)』, 평양: 평양출판사, 1994).

이것이 소위 ‘2월 19일 선언’이라는 문헌으로 핵심 내용은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였다.

“온 사회를 김일성주의화 한다는 것은 수령님의 위대한 혁명사상, 김일성주의를 유일한 지도이념으로 하여 우리 혁명을 전진시키며 김일성 주의에 기초하여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고 완성해 나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당시까지 북한의 지도이념이었던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차별화되는 새로운 지도사상으로서 김일성주의의 독자적인 지위확립을 의미하였다.

이러한 배경에는 기존의 지도사상과 이념이 김일성의 절대적 권위와 김정일의 후계체제 구축에 장애가 된다는 판단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주체사상에 입각한 김일성 주의가 당의 지도사상으로 승격된 것은 수령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배의식과 복종심이 북한사회 전반을 지배하도록 하기 위한 세뇌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김일성주의의 정식화와 함께 김정일은 “수령은 인민대중의 통일단결의 중심, 혁명의 최고뇌수이며 수령이 없으면 당도, 노동계급도 없다”는 “혁명적 수령관”과 그에 기초한 수령론을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사상이론의 개발과 우상화작업과 함께 김정일은 수령절대주의체제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조치들도 취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74년 4월 14일에 발표된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이었다.
수령절대주의체제와 유일지도체계의 확립은 사실상 김일성의 권위와 지위에 대한 신격화와 절대화를 통해 김정일의 유일지도체제 구축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이는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에서 김일성의 유일적 영도는 김정일의 유일적 지도체제 확립을 전제로 한다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데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이 김정일의 유일지도체계 확립을 의미한다는 보다 분명한 해석은 1974년 10월 제5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일이 당, 군, 정의 모든 문제를 자신에게 집중시키고 자신의 지시에 따라 처리하며 자신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체계와 규율을 확립할 것을 강조하면서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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