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정광윤]   흔히 대한민국 대통령제를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부른다. 대통령에게 부여된 헌법상의 권한과 책임이라는 점에서는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대한민국 대통령은 ‘제왕’에 가까운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우선 국회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야당이 정부와 각을 세우려고 하면 뾰족한 수가 없다. 여당이라고 해서 대통령의 말을 잘 따른다는 법도 없다. 특히 대통령 임기가 중반을 넘어서면 여당은 대통령과 차별화를 꾀한다. 분단은 커다란 걸림돌이다. 언론 환경 또한 호의적이지 않다. ‘허니문’ 기간이 지나면 정부에 대한 과도한 비판을 일삼는다. 게다가 작금의 정보 시대에서는 정부의 일거수일투족이 노출된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은 ‘책임 의식’에 비해 ‘권리 의식’이 강한 편이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이런 ‘대한민국 대통령의 숙명’을 안고 있다. 우선 야권과의 관계이다. 현 야권은 민주화 운동 경험의 축적으로 대여 투쟁에 강하다. 그래서 정부-여당으로서는 이런 야권과의 관계 설정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현 야권과의 관계 정립에 대해서는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었을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 야당 대표를 역임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당 등 야권이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에 대해 장외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꼬이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이 사건이 이명박 정부 때 있었던 데다 이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에 있기 때문에 딱히 뭐라 말하기가 어렵고, 사과를 하라는 야권의 요구를 수용하기는 더 더욱 난감한 입장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가장 큰 난제인 대북 정책에 있어서는 박근혜 정부가 좋은 점수를 받고 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개성공단의 정상화를 이끌어냈고, 이산가족 상봉 문제도 북한의 몽니로 난항을 겪고 있지만 박근혜 정부로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대북관계에 있어 원칙을 견지하되 대화의 문을 열어놓는다는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현실적으로 적합한 대안임을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앞으로 주변 관계국들과의 유연한 외교를 통해 대한민국의 국익을 지키고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는 과제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에 ‘대한민국 최고 외교관’인 박근혜 대통령의 역량에 상당 부분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에게 있어 가장 괴로운 일은 ‘박근혜노믹스’의 수정이다. 이미 익히 알고 있듯이 박근혜 정부는 복지국가의 실현을 위해 재정을 알뜰하게 운용하고 세금을 제대로 거두겠다는 정책 기조를 약속했다. ‘맞춤형 복지’라는 말로써 야권의 ‘보편적 복지’와는 차별화를 도모했지만, 아무튼 복지 규모의 대폭 확대를 약속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사실상 보편적 복지에 가깝다. 늘어나는 복지 재정에 대해 세금을 늘리지 않고 대처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구상은 원론적으로는 바람직하지만, 현실이 정부의 목표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걱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박근혜 정부는 복지 규모를 일정 정도 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것은 어차피 예견된 일이다. 물론 박근혜 정부가 옳은 방향이라 하더라도 다소 무리한 공약을 한 것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는 있겠지만, 과잉 공약이 박근혜 정부만의 관성이 아니라는 점에서 너무 나무랄 일은 아니다. 오히려 재정 형편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복지 등 향후의 세출 예산에 대한 애로점을 국민과 함께 공유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이다. ‘국민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철학만큼은 존중될 수 있겠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음을 박 대통령도 인지해야 하고 우리 국민들 또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나라 살림 가계부’를 펼쳐놓고 다수가 공감하는 최대공약수를 찾아내는 일이 시급하다.

   따지고 보면 박근혜 정부가 구상한 대로 세금이 걷히지 않는 것은 시스템의 한계도 있지만, 그보다는 세금을 자진해서 제대로 납부하지 않는 잘못된 관행이 지속되어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재력이 튼튼한 재벌 기업이나 고소득 자영업자들이 불법과 탈법을 마다하지 않고 탈세를 자행하는 상태에서 아무리 세무당국이 지혜를 짜낸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경제 상황이 뒷받침되어야 세수(稅收)도 기대만큼 걷히기 마련이다. 요컨대 복지국가와 건전 재정의 실현은 정부의 설계가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국민적인, 사회적인 분위기가 호혜(互惠)정신과 준법정신 등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최소한의 추가 부담도 수용하지 못하는 세태에서 보편적 복지는 언감생심이다.

   박근혜 정부가 복지국가를 전면에 내걸게 된 데는 그 현실적 필요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편적 복지를 주창해 온 민주당 등 야권을 의식한 결과이기도 하다. 야권은 각종 무상 시리즈를 여과 없이 제안해왔다. 그러면서도 국민적인 인기를 끌기 어려운 세금 증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고 토건(土建) 등 불요불급한 예산을 줄이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발상을 하고 있다. 그리고 ‘부자 증세’를 외쳐 왔다. 그 실현이 어렵다는 것은 긴 설명을 요하지 않는다. 단적으로 토건 예산이 왜 늘어나는가?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불필요한 토건 예산을 마구 집어넣은 까닭이 아닌가? 여기에 민주당 등 야권의 책임은 없는가? 이런 식의 대중영합주의를 여당이든 야당이든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민생이 참으로 어렵다. 경기는 오랜 침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늘어나는 가계 부채, 심각한 전․월세 문제, 각종 생활 물가의 상승 등으로 다수의 서민들은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정부가 국민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는 명백한 한계가 있음에도 우리 국민들은 여전히 정부에 대한 기대를 거두지 않고 있다. 끝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분노를 서슴지 않고 표출한다. 내년 6월 초에 실시되는 지방선거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그 때까지 경제 상황이 호전된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여당인 새누리당의 고전이 예상된다. 이 성적표가 박근혜 정부의 향후 입지에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국정의 성공을 위해서는 대통령과 정부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의 역할 또한 간과할 수 없다. 그런데 과연 새누리당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해야 한다. 이런 때에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차기 당권 혹은 대권을 향한 움직임이 꿈틀거리고 있다.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당권이나 대권을 염두에 둘 수는 있겠지만,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이제 겨우 7개월밖에 안 된 시점에서 차기를 도모하는 것은 여러모로 부적절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이제 막 의욕적으로 일할 시점인데, 야당도 아닌 여당 안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지금까지 비교적 순항해왔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곳곳에 지뢰가 깔려 있다. 역대 대통령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기대와 실망의 사이클’을 박근혜 대통령이 끊기 위해서는 각별한 지혜와 각오가 필요하다. 상당수 국민들은 야당의 장외 투쟁을 곱게 보고 있지 않지만, 대한민국의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의 포용력을 기대하는 국민들 또한 많다. 그리고 복지와 재정 등 박근혜 정부가 당면하고 있는 정책 과제들을 잘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핵심 역량들과의 소통이 불가피하다. 수평적 리더십을 요구하는 시대정신을 박근혜 대통령은 외면해서는 안 된다. 본인 스스로 노력하고 있겠지만, 더 낮은 자세로, 더 따뜻한 마음으로, 더 총명한 통찰력으로 앞으로의 국정을 잘 이끌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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