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정광윤]   9월 4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이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되었습니다. 곧바로 국가정보원은 이석기 의원에 대한 영장 집행을 했습니다. 앞으로 이석기 의원의 신병(身柄) 처리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예단할 수는 없습니다만, 이석기 의원을 비롯한 통합진보당 사람들은 누구를 원망하기 이전에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데 대해 통절한 반성을 먼저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국회의원을 여러 명 배출한 공당(公黨)이면서도 국민 다수는 물론이고 진보 진영조차도 반대하는 낡은 이념에 사로잡혀 있는 실상에 대한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역사가인 에릭 홉스봄(Eric J. E. Hobsbawm)은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라고 불렀습니다. 수많은 인명들이 살상된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그 이후의 냉전 시대만으로도 그런 진단이 충분히 가능하겠지요. 왜 20세기는 ‘극단의 시대’일 수밖에 없었습니까? 극단적 이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20세기는 ‘이념 과잉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로 수놓은 대표적인 이념은 잘 알다시피 나치즘과 스탈린주의입니다.

   나치즘은 제2차 세계대전을 불러들이기도 했습니다만, 600만 명이 넘는 유대인을 학살한 주범이었습니다. 스탈린주의는 수백만 명의 소련 인민을 죽게 만들거나 인권을 유린했습니다. 둘 모두 체제의 유지를 위해 인간성을 말살했다는 점에서 ‘전체주의’입니다. 나치즘은 제2차 세계대전과 더불어 종결됐습니다. 스탈린주의 역시 스탈린의 사망과 더불어 종말을 고했습니다. 그러나 소련 공산주의는 그 이후 30년 정도 더 버텼습니다. 1980년대 말에 이르러서야 사형 선고를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끈질긴 그 무엇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 체제를 지탱하고 있는 국가는 북한과 쿠바 정도입니다. 중국도 공산당이 통치하고 있습니다만, 경제적으로 시장경제라는 점에서 온전한 의미의 사회주의 체제는 아닙니다. 또 사회주의를 인류 사회의 거대한 실험장으로 만든 마르크스주의는 이론으로서는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사실상 퇴장했습니다.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해부학’으로서는 유효한 측면이 있지만, 그 대안인 사회주의 체제만큼은 앞서 말한 대로 박물관으로 보내지고 말았습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가 명명한 대로 ‘역사의 종말’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사회주의는 다시 부활할 수 없을 것입니다.

   20세기 ‘극단의 시대’가 인류 사회에 남긴 상흔(傷痕)은 말할 것도 없이 지대(至大)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진행형이기도 합니다. 한반도야말로 그 ‘극단의 시대’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폐허 속에서 일어나 세계가 부러워할 정도로 모범적인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냈습니다만,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비참하고 비인간적인 전체주의 체제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한민국과 북한 체제의 간극이야말로 체제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확실히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선택이 옳았습니다.

   엄연히 말해서 북한 체제는 사회주의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어느 사회주의 체제가 3대째나 정치권력을 세습한단 말입니까? 요컨대 북한 체제는 ‘김씨 일가(一家)의 왕정’에 다름 아닙니다. 주체사상이란 것도 겉으로는 그럴 듯해도 김씨 일가가 북한 인민들을 통치하기 위한 방편일 따름입니다. 게다가 거듭 강조하거니와 북한은 지구상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가장 무능하고 폭압적인 체제입니다. 지금은 배급 체계마저 붕괴되어 그나마 남아 있던 사회주의의 외양(外樣)마저 이미 무너진 지 오래입니다. 문제는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 내부에 김씨 일가를 추종하는 집단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이석기 의원 그룹 같은 종북 집단을 잉태한 것은 1980년대였습니다. 1980년대의 대한민국 운동권은 표면적으로는 ‘직선제 개헌’ 쟁취 등의 민주화 운동에 동참하고 있었습니다만, 사실은 혁명 운동에 경도되어 있었습니다. 운동권은 민주화 이후의 대안을 놓고 소련식 사회주의를 선호하는 PD(People Democracy)파와 외세(미국)를 몰아내고 북한과의 통일을 추구하는 NL(National Liberation)파로 양분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NL파는 대한민국을 ‘미국 제국주의의 식민지’라고 규정했습니다.

   PD파는 1980년대 말 소련 공산 체제의 몰락으로 대부분 운동 현장을 떠나거나 체제 속의 진보 정치나 진보 운동으로 선회했습니다. 반면에 NL파는 ‘우리식 사회주의’의 존재이유를 인정해서인지 그 이후에도 대한민국 운동권을 장악해 왔습니다. NL파가 운동권의 주도권을 쥘 수 있었던 원동력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소련보다는 북한이 정서적으로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둘째, 소련식 사회주의보다는 북한 체제에 대한 학습이 보다 쉬웠기 때문입니다. 셋째, NL파는 지식인과 운동가에 의한 선도적인 투쟁을 강조했던 PD파와는 달리 전술적으로 대중과 함께 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NL이든 PD든 세계적으로는 그런 낡은 이념들이 퇴조하고 있던 시점에 대한민국에서는 전성기를 누리던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특히 주체사상에 대한 광풍은 ‘집단 최면’ 외에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습니다. 그 이후 1980년대에 횡행했던 낡은 이념은 종전보다는 크게 쇠퇴했습니다만, 그 정서는 아직도 대한민국 정치권과 시민사회에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특히 이석기 그룹처럼 대한민국을 외세의 지배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는 관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가 이들의 논리를 수용하겠습니까?

   분명히 대한민국은 ‘사상의 자유’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사상이나 이념을 갖고 대한민국 체제를 뒤흔들거나 파괴하려는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하는 것 또한 법치국가로서의 너무나 당연한 규범입니다. 그런데 사법 처리만으로는 이들을 물리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주체사상과 같은 변종 이념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설 자리가 없다는 점을 깨닫게 해 주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언필칭 진보 정당들이 종북 집단과 함께 할 수 없음을 선언함으로써 가능합니다. 이번 체포동의안 처리를 계기로 그 가능성이 보입니다.

   루마니아 출신의 소설가 C. V. 게오르규(Constant Virgil Gheorghiu)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에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한 소설 『25시』를 펴냈습니다. 주지하듯이 이 소설에는 앞서 거론한 제2차 세계대전, 나치즘, 소련 체제, 전체주의라는 ‘극단의 시대’의 여러 현상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게오르규는 ‘25시’를 “메시아의 왕림(枉臨)으로도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시간”이란 뜻으로 사용했습니다. 즉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서구 사회가 안고 있던 전체주의라는 우울한 자화상을 제기한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그 이후 서구 사회는 많이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25시’가 서구 사회보다는 북한 체제에 딱 어울리는 용어입니다. 이석기 그룹에게 묻고 싶은 질문도 이것입니다. 모두들 ‘메시아의 왕림으로도 어떻게 해 볼 수 없다.’고 여기는 북한 체제를 언제까지 미화하고 옹호할 수 있으리라 봅니까? 북한 체제도 그렇지만, 이석기 그룹 또한 ‘25시’에 위치해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그들의 사고가 머물러 있는 1920년대로 되돌아가는 일은 불가능하니까 그들이 자리 잡고 있는 시간이야말로 보편적인 국민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25시’인 것입니다. 그들만의 폐쇄성이 강한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저는 지난 5월에 어린 아이들이 포함된 130명 가까운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참석한 집회의 분위기가 우리 국민의 보편적인 정서와는 너무나 다른, 사이비 종교의 부흥회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어린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무슨 내란 음모냐고 반문했습니다만, 그것이 내란 음모든 아니든 적어도 어린 아이들이 포함된 ‘가족들’끼리 심각한 결의를 다지는 유사(類似) 종교 행사였던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말하자면 이정희 대표의 말처럼 ‘농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진지하고 엄숙한 종교 집회였던 것입니다. 그것이 비록 망령(妄靈)일지라도 말입니다. 바꾸어 말해서 이들로부터는 1980년대 혁명 운동 당시의 음습했던 분위기가 상기되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문호(文豪)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는 “사상과 말은 진실에 기초되어야 한다. 자기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사상이나 말은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끝없는 변명과 말 바꾸기로 일관하고 있는 통합진보당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금언입니다. 이들이 아무리 낡은 이념에 포박(捕縛)되어 있다 하더라도 대다수 국민들은 물론, 한때 한배를 탔던 정의당과 불과 얼마 전까지 연대 투쟁을 했던 민주당조차도 자신들로부터 등을 돌렸음을 알고 있는 이상, 이제 오랜 미몽(迷夢)에서 깨어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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