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정광윤]  현대 민주국가들에게 있어 가장 큰 난제는 재정의 건전성 확보이다. 우리는 몇 년 전에 그리스 등 남유럽 여러 국가들이 재정 파탄의 위기에 직면에 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국가 부도’가 결코 불가능한 현실이 아님을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미국의 경우에도 비록 지방정부에 해당되는 현상이지만, 더 이상 공무원들의 급여를 지급할 수 없을 만큼의 부도를 겪는 일이 왕왕 있다.

   상식적인 얘기이지만, 정부가 요술 방망이를 갖고 있지 않은 이상, 국민이 내는 세금의 범위 안에서 지출을 할 수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국채나 공채를 발행하거나, 화폐를 마구 찍음으로써 재정난을 당장 회피하는 방법이 있지만, 이런 방법 역시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가 없다. 국채나 공채의 발행은 한마디로 부채를 지는 것이며, 화폐의 남발은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경제 행위 주체들의 불신을 받는 등의 더 큰 문제점을 유발할 수 있다.

   요컨대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은 국가 재정에 가장 잘 들어맞는 말이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재정의 건전성이 비교적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지만, 남유럽의 재정 위기가 남의 일로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적신호가 켜져 있다. 정부가 2011년 12월 산출한 대한민국의 공공 부채 규모는 일반정부 부채 468조 6,000억 원에다 공기업 부채 574조 8,000억 원을 더하여 약 1,043조 4,000억 원이다. 이것은 국내총생산(GDP)과 대비하면 75.2퍼센트 수준으로서, 그동안 정부가 강조해온 ‘GDP 대비 30퍼센트 선’을 훨씬 웃도는 수치이다.

   공기업 부채까지 공공 부채에 포함시켜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 공기업은 기업으로서 필요에 따라서는 차입금을 통해 사업을 수행하는 것이 레버리지 효과가 클 때도 있다. 그리고 공기업의 자산 및 자본에 대한 고려 없이 부채 규모만을 공공 부채에 포함시키는 것이 온당하지 않는 점 또한 있다. 다만 토지주택공사처럼 과도한 부채를 안고 있는 공기업의 경우, 국가 재정의 투입 없이는 부채를 줄일 방도가 없기 때문에, 공기업 부채를 공공 부채에 포함시킬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되 보다 합리적인 산출 공식이 필요할 것 같다.

   주지하듯이 박근혜 정부는 ‘맞춤형 복지’의 강화와 더불어 재정 건전성을 정부의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 앞서본 것처럼 대한민국의 재정 건전성이 점차 침식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과 함께 복지의 재정 수요가 크게 늘어나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가 재정 건전성에 국정 운영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재정 건전성의 방향은 알뜰한 국가 재정 운용과 무분별한 조세 감면 제도의 축소, 지하경제의 양성화로 요약할 수 있다. 바람직한 편이지만, 과연 그 뜻을 관철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지난 8일 정부는 세법 개정안을 확정했다. 그 골자는 근로 소득자의 연말정산 과세를 소득공제 방식에서 세액 공제 방식으로 바꾸고, 중소기업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대신에 대기업에 대해서는 투자 지원 혜택을 축소하는 것이다. 또 그동안 과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종교인에 대해서도 과세를 하기로 했다. 근로 소득자의 경우에는 대체로 납세액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예컨대 연봉 7,000만원 근로자는 평균 33만 원의 세금을 더 내야 한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러한 개정안이 ‘증세는 없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을 뒤집는 것이라 비판하고 있지만, 핵심은 대통령 선거 때 발표한 박근혜노믹스에 거의 다 들어 있다.

   사실 박근혜 정부의 이번 세법 개정안은 고육지책의 측면이 강하다. 늘어나는 재정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모든 경제 주체들의 고통 분담이 필요하고, 그 중에서도 형편이 나은 개인이나 기업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다만, 정부가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방향으로 노력한다 하더라도 여기에는 한계가 따르는 만큼 이른바 ‘유리알 지갑’이라 불리는 근로자들의 세금 부담이 상대적으로 가중된다는 모순에 대해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당장 야당인 민주당은 세법 개정안이 국회로 넘어오면 원천적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고, 여당인 새누리당 역시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 정부의 원안대로 통과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이번에 발표한 세법 개정안의 대강(大綱)을 국민들에게 알렸고, 대통령 선거에서의 당선을 통해 추인 받았다는 생각을 가질 수는 있지만, 일부 계층의 세금 부담이 늘어나는 만큼 국민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말하자면 박근혜노믹스를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국민대협약과 같은 채널을 통해 여론을 집약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 아닌가 싶다. 더욱이 공직사회와 공직자들에 대한 불신이 깊은 상황에서 국민들이 내는 세금이 제대로 쓰일지에 대한 회의감이 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박근혜 정부는 정부 개혁과 정치 개혁을 향해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 스스로 천명한 알뜰한 나라 살림을 위해서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런 조짐이 별로 보이지 않고 있다. 물론 정부 개혁과 정치 개혁이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님을 우리 국민들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정부 개혁은 모르겠지만, 정치 개혁의 경우에는 대통령이 주도하는 데 따른 부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국가정보원 등 대형 이슈를 맞닥뜨리고 있는 상황에서 오해를 살 수 있는 여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공직사회와 정치권으로는 박근혜 정부가 꿈꾸는 ‘행복한 대한민국’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부 개혁과 정치 개혁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예를 들면 행정구역 개편의 추진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공직자와 국회의원들의 기득권 줄이기는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 하는 국민들이 많다.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강행하지 않더라도 정부 개혁과 정치 개혁을 유도할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많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이 일에 앞장서기를 바란다. 특히 2014년도 정부 예산안의 편성과 국회 심의·의결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챙겨 과거처럼 방만한 예산의 편성과 심의가 되지 않도록 지휘해야 한다. 그리고 공기업 등 공공기관의 개혁도 화급하지만, 공기업의 부채가 무분별한 사업 전개에서 비롯된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정부나 국회의 부당한 개입을 막는 장치를 도입해야 한다. 이런 일이 이루어지면서 국민더러 세금을 더 내어 달라고 호소해야 설득력이 있는 법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단히 중요한 시기에 집권자의 자리에 앉아 있다. 한 사람의 탁월한 지도자에 의해 국가가 굴러갈 수 없는 시대적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어쩔 수 없이 대통령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그렇다고 과거 권위주의 시대처럼 대통령이 자의적(恣意的)으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모순 속에서 대통령의 지혜가 더 없이 요망된다. 그래도 말없는 다수를 믿고 좋은 의도대로 나아간다면 소기의 성과를 거둘 날이 오리라 믿는다. 이 시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보다도 소통과 유연성이다. 정부가 그려놓은 청사진대로 굴러갈 수 없는 역학관계에 처해 있는 만큼, 다소 더디게 가더라도 국민과 함께 진일보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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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출처 = 기획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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