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디자인 김민서] 과거 서구 열강국가들에게 동남아시아는 깃발을 꽂기만 하면 무수한 이득을 빨아들일 수 있는 그야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었다. 때문에 조금의 영토라도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으며 그런 경쟁은 대부분의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식민지로서의 과거를 갖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동남아시아국가들 중 단 한 번도 식민지 경험을 하지 않은 국가가 있다. 바로 태국이다. 태국 국민들은 자국이 한 번도 누군가의 지배하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는데 이들은 어떻게 열강들의 야욕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일까? 

1850년대 동남아시아를 차지하기 위해 엄청난 경쟁을 펼치던 미국, 대영제국, 프랑스 등 서구열강들은 대부분의 아시아의 국가들을 식민지로 삼고 있었다.

특히 대영제국과 프랑스는 비슷한 규모로 아시아 국가들을 정복하고 있었고 결국 태국에 이르러 충돌하게 되었다. 

태국을 차지하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는 알력싸움을 하다 전쟁 직전까지 이르렀는데 프랑스의 중재로 태국을 임시적 중립국으로 삼고 각 식민지의 충돌을 방지하는 완충국으로 삼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태국에 아무 타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원래 영국과 프랑스를 합친 것보다 넓었던 태국의 영토는 독립을 보장 받기 위해 오늘날의 캄보디아와 라오스에 해당하는 영토를 열강에 넘기면서 반 토막이 나 버렸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태국은 친독일에 가까웠다. 연합국에 속해 있는 영국과 프랑스에는 많은 영토를 빼앗겼지만 독일은 태국에 철도 개발 등에 도움을 주었고 영토를 빼앗는 것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국의 라마6세 국왕은 1914년 태국이 중립국임을 선포하고 거의 전쟁 막바지까지 이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1917년 전쟁이 미국의 선전포고로 인해 연합국 측의 승리가 거의 확정되자 라마 6세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대해 선전포고를 해 전승국으로서의 위치를 얻을 수 있었고 이는 태국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오게 된다. 

태국은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는다. 어느 국가와 친밀도를 높이고 있더라도 맹목적으로 그것을 유지하려 하지 않는다. 이는 이중적이라고 볼 수 도 있지만 대나무처럼 유연하다고도 볼 수 있다. 현재도 태국은 반공을 기본노선으로 삼아 미국과 적극적인 친교를 맺어 많은 경제 원조를 받았지만 공산국가들과도 돈독한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태국은 나쁘게 말하면 기회주의적인 외교정책을 펼쳤지만 좋게 말하면 유연하고 선택에 있어서 과감한 외교 전략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동남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식민 지배를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성공이라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그 과정에서 많은 영토를 잃는 등의 손해를 보기도 했지만 주권을 끝까지 지켰다는 것은 태국 국민들이 자랑스럽게 여길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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